새로 생긴 습관
매일 저녁 짧은 기도를 한다. 나쁜 소식이 날아들었던 그 날부터. 목욕재계 한 셈 치려고 샤워 직후에 하곤 하는데, 격식 같은 건 없고 그냥 넙죽 엎드려 소원을 비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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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신이라면,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바라는 것만 줄줄 늘어놓는 인간보다는, 불행 중 작은 다행에도 감사 먼저 할 줄 아는 인간을 굽어 살필 것 같아서, 나도 고마운 점부터 얘기하곤 한다. 발견 당시 전이가 없었던 것 (하지만 그 사이에도 일어났을 수 있는 일), 주요장기보다는 그나마 덜 치명적인 부위라는 점 (대신 희귀암이라는 엄청난 단점이), 방사선 치료를 무사히 마친 것 (효과는 미지수이나). 괄호 안에 적힌 온갖 불안과 의심이 신의 심기를 거스를까 우려하며 이번엔 바라는 점들을 얘기한다.
성공적인 수술이 되기를, 회복이 빠르기를, 장애가 남지 않기를, 재발과 전이가 없기를, 건강하게 오래 내 옆에 있을 수 있기를, 그러다 퍼뜩 '나도 건강해야 의미가 있지' 란 생각이 들어서 "저도 건강하게 해주세요!" (그러다 다른 가족 생각도 나서) "양가 가족들도 다들 건강하게 해주세요...!!" 등등. 인간은 역시 간사하구나. 감사한 점은 마른 행주 쥐어짜듯 몇 가지 찾아낼 뿐이면서 바라는 점은 수도 없어 말하다 숨 가쁠 지경이네.
기도의 마무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될거라는 믿음과 감사를 먼저 갖게 해달라' 는 말로 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최악의 경우는 그 '어떤 상황' 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고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그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닌 걸. 다만, '그런 일 까지는 설마 일어나지 않을거야,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거야' 라는 마음 저 깊은 곳의 안달복달을 꾹 누른 채, 되도록 신께 너무 성가시지 않은 기도를 하려 노력한다.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마음자세로...한껏 조아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