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빨래 바구니가 비어있는 순간

SingerJ 2025. 2. 21. 15:47

행복이 별 건가. 자려고 누웠을 때 맘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그게 행복이라잖은가? 그런데 그거 굉장히 별 거 맞지 말이다. 얼마나 쉽지 않은 건데...그리고 몹시 잠시 동안만 지속되는. 빨래 바구니가 텅 비어있는 그 찰나처럼. 

사메의 수술이 잘 끝났다. 그러나 수술 전의 상황은 많이 나빴다. 문제의 오른팔을 절단해야 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었다. 손상된 신경을 암과 함께 제거하고 나면, 신경이식을 하더라도 기능마비가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그럴 바엔 절단이 차라리 낫다는 소견. 희망을 걸었던 방사선 치료도 효과가 거의 없어 비관적이었고, 침착하려 노력했지만 마음이 너무 힘든 나날이었다.     
 
그래도 남아있던 희망은, 수술 당일 막상 열어보면 다를 수 있다는 것. 천만다행으로 그게 현실이 되었다. 손상된 신경 하나와 혈관은 다리에서 끌어와 이식했고, 다른 두 신경은 (예상을 뒤엎고) 살아 남았다고 한다. 팔과 손가락에 약간의 기능장애가 지속되긴 할 테지만 (정교한 손가락 동작, 팔꿈치 펴기 등이 당분간 힘들 거라고 함) 물리치료로 차차 좋아질 수 있다고 하니 이건 절단에 비하면 선녀가 아닌가.
  
8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난 걸 보고 돌아오는 길. 재발률 최소 40%, 70%까지도 간다는 질긴 암이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지금만큼은, 빨래 바구니가 말끔히 비어있는 그 귀한 찰나가 맞는 것 같다. 짧다 하여 이런 고마운 순간을 무시하는 건 유죄. 잡다한 다음 걱정으로 빨래 바구니가 또 금방 차오르기 전에 깊은 감사로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