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

나를 냅둬라

달밤의 J 2026. 8. 27. 19:44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 중이던 오늘 아침.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 찰나,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곧바로 실행에 옮겨 후다닥 버스에서 내린 뒤, 보스인 헬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아파서 못 가니 좀 괜찮아지면 집에서 일하겠다고. 

3분도 안 되어 답장이 왔다. 무리하지 말고 그냥 주말까지 쉬는 게 어떠냐고. 살짝 찔렸지만, 이것도 다 평소에 쌓아놓은 덕(!) 덕분이려니 하고 뻔뻔해지기로 했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에 잘 해야 한다. 봐봐, 꾀병도 이렇게 잘 먹히잖아. -_-;;

하지만 사실 꾀병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올해 들어 거의 매일 극기훈련 같은 상태가 지속되던 중, 어제 우리 Business Development Manager의 실수 때문에 내가 치워야 할 똥의 무게가 가히 1톤은 넘게 생겼다. 미안하면 다인가? 나는 앞으로 거의 두 달을 죽어나게 생겼는데.

그 여파인지 어젯밤엔 별의별 업무 파트너가 총출동하는 악몽을 꾸고, 오늘 아침 출근길은 비몽사몽이었다. 버스가 출발하려는 순간 직감했다. 내려야 할 것 같다고. 오늘도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 진짜로 아플 것 같다고. 회사는 내 시간을 산 것이지 건강까지 산 건 아니잖은가? 내리자.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제일 먼저 MS Teams에서 로그아웃했다. 그리고는 어제 퇴근 이후로 밀려든 이메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5분이 멀다 하고 챗으로 게으르기 짝이 없는 질문을 던지거나 전화 걸어대는 인간들이 없으니 능률이 이렇게 높을 수가.

내일 오후 파트너사가 온다며 '꼭 참석 요망' 회의 초대가 오길래 거절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내가 꼭 필요한 회의로 보이지 않으니, 다음부터 이런 요청은 최소화해주면 고맙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거절해 놓고 맘이 몹시 불편하긴 하지만 거절 근육이 자라나는 성장통쯤으로 생각하련다. 

내게 정말 필요했던 건 나를 좀 냅둬주는 것이었구나. 아니 뭐 놀게 내버려두라는 것도 아니고, 일 좀 하게 내버려두라는 건데... 바람 치고는 너무 소박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