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터레스트는 가라, 현실적 커피 바
집 한구석에 아늑한 coffee bar를 갖는 건 오랜 바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실현을 위한 노력은 전무하였는데, 그건 아마도 수많은 랜선 집구경 후 배신감만 느끼다 🤣 포기해버려서인지도 모른다. '작은 공간에 꾸민 커피 바' 같은 제목에 끌려 클릭해 보면, 아니 이게 어디가 작다는 거여? 싶은 넉넉한 공간에 카페를 아예 하나 차리는(!) 경우를 좀 많이 봤어야지 말이다. 위쪽 선반 두세 칸은 기본에, 아래쪽엔 커피용품 전용서랍에, 덩굴식물 장식 놓을 자리까지 꼭 있고 말이지.
그럴 공간도 능력도 없어 포기하고 살았는데, 이제 내가 한번 보여주겠소. 예쁜 소품으로 꾸며진 핀터레스트 스타일은 가라. 없는 공간 쪼개 어찌어찌 커피 바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고군분투한 짠내 나는 현실적 커피 바를.
딱 요만큼이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왼쪽은 벽, 오른쪽은 싱크대, 위 아래는 그릇 수납장으로 막힌 박스형 코너. 원래는 이 자리에 커피 관련 물건이라곤 커피머신 하나뿐이었다. 공간의 절반은 식기거치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용품 수납용으로 택한 선반. 얇고 오픈형이라 덜 답답해 보일 것 같아서.

90도로 접으면 코너에 딱 맞게 들어가는 게 맘에 들었다.

정말 최소한의 물건만 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일단 컵 두 개 (허여멀건 공간에 생기를 주는 유일한 존재)

자일리톨이 든 유리병과 꿀병

쟁반에는 시럽병과 카카오 파우더

그리고 조금씩 덜어둔 티백. 플라스틱통이 비주얼적으로다가 영 딸리긴 하지만 (원래 청소용품 수납장에서 물티슈 담당이었음)

아래쪽 선반에 쏙 들어가는 안성맞춤 크기를 가지고 있다.

커피캡슐은 볼에 넣어 선반 아래쪽에 밀어 넣고

덩굴식물 늘어뜨릴 자리는 없지만, IKEA 인공 덩굴식물에서 잘라낸 꼬다리 ㅋ 부분을 미니화병에 꽂아 약간이나마 초록을 곁들임.

커피머신, 전기주전자, 컵, 커피캡슐, 잡동사니까지- 꼭 필요한 건 다 모인 것 같음.

아, 램프도 하나 놓았다. 안 쓰는 물건 모아두는 지하실 수납함을 뒤적이다 발견.

굉장히 오합지졸 느낌이지만, '가급적 집에 있는 물건들로 꾸민다'는 취지에 부합하는 듯하여 맴이 흡족. 아무리 정리해도 완전히 숨겨지지 않는 전깃줄. 전기는 쓰고 싶지만 줄은 너무 보기 싫은 간사한 마음이여. 투명 전깃줄 만들어주는 사람한테 무조건 노벨상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커피 마시는 냥이.

원래 이런 거 붙이는 취향 아닌데.. 마치 월요일 아침의 나를 보는 듯한 저 고단한 눈동자와, 커피 한 잔으로 버텨보려는 의연함이 심금을 울리는 관계로 🥹 냥씨를 전격 영입하였다.

침실 선반에도 커피 마시는 고양이 그림이 있다. 커피 바의 냥이가 월요일 버전이라면, 이 고양이는 금요일 버전 같달까. 한 주를 무사히 살아내고 그 주의 마지막 회의를 앞둔 금요일 오후의 모습 같다 (감정이입 지나친 듯).

좁고 조잡할지언정 커피공간을 마련한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커피만큼 이토록 한결같은 위안을 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우리나라와 스위스의 안녕만큼이나 커피 생산국들의 평화와 안녕 또한 늘 진심으로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