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tria] Vienna
일정을 짜다 보면, 소위 '안 땡기는' 곳이지만 기차노선상 부득이하게 들르게 되는 곳이 생긴다.
내겐 빈이 그랬다.
친구 때문에 독일에 좀 오래 머물렀던 데다, 스위스에서도 일정을 연장했었기 때문에
빈에 들어섰을 땐 이제 독일어권이 좀 지겨운 터였다.
게다가 엎친 데 덮쳤다고나 할까, 우연히 만난 한국 배낭족(남자) 하나가 따라 붙으며 코치 아닌 코치를 해대는데...
이거야 원 언성을 높이지 않는 한 당최 안 떨어져 나갈 듯한 강력 오지라퍼 (그래서 어찌 했냐. 결국 언성을 높였다 -_-;;).
그래서 나에게 빈은, 음악 향기로운 모짜르트의 도시 보다는 그저 교통 하나는 편리한 특징 없는 곳으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후에 영화 'Before Sunrise' 를 보며 얼마나 아쉬워 했던가.
줄리 델피가 재잘거리며 걷던 거리, 시내 ring의 야경-
만일 이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빈에 갔더라면 나도 그 곳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빈의 볼거리는 주로 ring 주변에 모여 있다. 중심가가 반지 모양으로 둥글게 구획되어 있다 하여 ring이라 부르는데,
오페라 하우스, 시민공원 등 객들이 보고자 하는 것들은 그 안에서 주로 해결된다.
도시마다 다니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공원 산책이었다.
어느 도시에나 하나 정도는 있던, 커다란, 혹은 작은 공원.
지금은 쌀쌀한 겨울날이지만 이 곳에 봄이 피어나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상상을 해보며 한가로이 걷는 일은 작고도 귀한 즐거움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살았었다는 쇤브룬 궁전은 프랑스 베르사이유와 마찬가지로 겉모습보다는 안이 훨씬 그럴 듯 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화려한 감각이 엿보이는 궁전' 이라는 사전지식과는 달리
눈 쌓인 쇤브룬의 첫인상은 마치 노란 고등학교 건물 같아서 풋,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 안은 정말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정원은 훨씬 더 걸작이었다.
신동 모짜르트가 귀족들 앞에서 콘서트를 했다는 방도 잘 보존되어 있는데,
지금은 그 방에 대한 기억은 영 희미한 반면, 손창민의 아마데우스 개그가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 웃어버리고 만다. ^^;;
잠깐 딴얘기- 유명 음악가들의 국적은 어린이 퀴즈 프로그램의 단골질문이었다.
Ex. 바흐, 헨델, 베토벤, 멘델스존, 모짜르트, 슈베르트 중에서 국적이 다른 사람은 누구누구 일까요?
(정답: 모짜르트와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나머지는 독일.)
쩝...예전엔 그런 질문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어디서 태어났고, 무슨 일을 겪었나 하는 그 작은 히스토리들이 한 인간의 성장과 업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하면
이젠 퀴즈 프로그램에 그런 문제가 나오더라도 결코 바보 같다고 말하진 않을 것 같다.
비엔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빈에서 꼭 마셔보는 것이 있으니,
유명한 전통 케잌(이름을 잊어버렸다)과 세트메뉴로 파는 Melange다.
난 사실, 위 그림처럼 생크림을 얹어주는 우리나라식 비엔나 커피를 좋아하지만
오리지널 그것은 카푸치노 쪽에 더 가깝게 우유거품을 뒤집어쓰고 나왔다.
어쨌거나 포인트는 숟가락으로 젓지 않고 입가에 묻혀 가며 마시는 것.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 아래, 뜨겁고 향기로운 커피.
그런 매력을 빈에서 찾아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부다페스트로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