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가련한 신세

SingerJ 2021. 11. 20. 23:16

쇠뿔도 단김에 빼려고 독일어 강좌에 당장 등록했다. 다음주에 첫수업이다.
하...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수시로 농땡이 쳐가며 독일문화원에 다닌 이후로 얼마만에 듣는 강좌인가.
당연히 그때보다는 지금의 독일어가 한결 낫지만,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나 자세는 지금이 오히려 더 간절한 것 같다.
원어민들 사이에서 살면서 주제파악을 좀 더 객관적으로 할 수 있게 된 탓이리라.
교재를 사들고 오는 길에 문득 기억이 나더라...점쟁이들이 했던 말이. 크하하.
지금까지 점집에 가 본 적이 세 번 있는데, 그 중 두 사람이 나더러 '외국에서 살아야 할 팔자' 라고 말했음.
음, 점 얘기는 나중에 다시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외국어가 주제이니 그 관련 얘기만 간추리자면-
외국에서 살게끔 운명이 정해져있고 또 그래야만 인생이 무탈하다는 얘기를 두 사람이 거의 똑같이 했었다.
내가 너무 어리숙해서 그릉가는 몰라도, 그때는 들으면서 속으로 제법 신기해했더랬다.
특히 그 중 한명은 이 얘기를 사뭇 비극적으로 (-_-ㅋ) 표현했었는데. 뭐랬더라-
"나와는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매일 보고, 내 말과는 다른 말을 하고 들어야 하며, 다른 음식을 먹고,
낯선 것들을 대하며 타국에서 살아야 하니...네 신세가아~ 참으로 가련하도다아~..." 라고 했던 것 같다.
그 여도사님이 이 말을 매우매우 리드미컬한 어조로 방울다발을 쩔렁쩔렁 흔들며 말했는데
옆에 있던 내 동생 웃음 참느라 고개 숙인 채 어깨를 들썩거리고. 아...다시 떠올리니 새삼 x팔린 광경. -,.-
그 이후로 다시는 점 같은 건 안 보리라 다짐했지만 하여간 그땐 그랬다.
그 와중에 생각했던 건, 다른나라에 살면 그 나라 말을 써야하는 당연한 사실이 '가련하게' 보일 수도 있구나- 하는 거.
하기 싫은데 그러고 살아야 하면 진짜로 가련하겠고, 누군가에겐 별 의미 없을 수도, 또 누군가에겐 스스로 택한 일일 수도.
이래서 역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를 아는 거로구나 라고- 새삼 그 생각을 점집에서 했던 게 기억난다.
그 가련한 신세가 어느덧 12년째에 접어들었고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한 오래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