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퇴한 날
그제 하루 쉬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웬 걸, 어제 더 심했고 오늘은 더 심해졌다. 하루하루 피크를 경신한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날이 창대(!)해지고 있는 이것의 정체는 단순감기가 아니라 독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내 꼴을 보는 사람마다 얼른 집에 가라고 한마디씩 했다. 옆 사무실 다그마, 다음엔 중간보스 헬렌, 나중엔 왕보스 마티아스까지.
그지그지! 역시 집에 가는게 좋겠지? 내일도 오지 말고 주말까지 쭈욱 쉬는게 좋겠지! 라고 못 이기는 척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놀고 싶어서 이런 말 하는게 절대 아니라 아픈 사람이 부득부득 출근하는거 사실 민폐 아닌가요.. 상 중에서도 제일은 개근상이라 믿고 자라서 아파도 미련하게 버티는 버릇이 나도 모르게 나오지만, 그런 교육은 내 세대에서 끝이었기를.
집 근처 공원을 느릿느릿 가로질러 퇴근하는 길. 평일 한낮의 공원은 참으로 조용하다.
익어가고 있는 이름 모를 열매와, 제 계절을 맞아 부지런히 피어나고 있는 꽃들.
햇빛 아래에선 아직도 화려하지만
이제는 차츰 물러나 다음해를 기약할 때..
이 조각상은 볼 때마다 놀라게 된다. 특히 비 오는 날 어두컴컴한 저녁에 마주치면 거의 공포영화 수준!
라벤더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는 '라벤더 투어' 가 절정일 때다. 아비뇽 근교 라벤더 농장에 데려가주는 투어인데 요맘때가 최고 성수기였던 듯.
꽃마다 벌이 바삐 일하고 있길래 최근에 산 접사렌즈를 마침 시험해 보고자 하였으나...
두려워서 도저히 더는 못 다가가겠는 것;; 몇날 며칠 무거운 렌즈를 가방에 넣어 다니며 기회를 엿보았건만...내 인생에 곤충촬영은 없는 걸로. ㅠㅠ
한 놈만 걸려라- 하기엔 너무 허술한.. 걸렸다가도 숭숭 다 빠져나갈 것 같은 폐업그물.
감기로 꽉 막힌 콧속으로 짙은 풀냄새가 들어오는 착각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바람, 새소리...평일 낮 공원은 늘 이런 모습일까.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잡동사니를 또 사버렸다. 집에 믹서도 있고 도깨비 방망이도 있는데 쓸 데 없이 스무디 기계 사왔다고 사메한테 뭐라 한 사람이 바로 나면서.
내가 해도 과연 이렇게 나올까요? 조만간 실험해 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