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에 내리자 마자 밀려오는 옛 추억들은 그간 흐른 세월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선명한 총 천연색의 것이었다.
유스호스텔을 찾아 가다가 예기치 못하게 헤맸더랬지. 그러자 어느 친절한 할머니가 티코 만한 차로 태워다 줬었고,
리셉션 청년은 'Do you have a 이불?' 이라고 한국말을 섞어 그야말로 황홀한 리셉션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쥐 죽은 듯 적막하던 실베스터의 밤, 그리고 95년의 새해 첫날 네카 강변의 공중전화로 집에 문안인사를 했던 기억.
예상대로 숙소사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남은 데라곤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농가 아니면 최고급 호텔들 뿐.
어찌 할까 생각하다가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해보니 환영한다 한다. ^^;;
음...숙소까지 그 시절 그 곳으로 할 생각은 사실 없었는데 일이 좀 우습게 되었다.
동물원 옆 유스호스텔. 하핫...! 반가워요 코끼리, 잘 있었니 원숭이~ 막상 다시 보니 너무 반가워서 오길 잘 했다 싶었다.
뭐 꼭 옛 추억을 곱씹자고 온 건 아니었는데 일이 자꾸만 이렇게 되고 보니 여하튼 감회가 깊달 밖에.
그러나 진짜로 감회 깊은 일은 check-in 때 일어났다.
'나갈 때 시트랑 이불은 세탁실로 옮겨 주세요' 등 규칙을 알려 주는데 한국말로 '이불' 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헛...! 그 '이불' 을 10년 후인 지금 또 듣게 될 줄 누가 알았나 말이다.
웃다 쓰러지는 -_-;; 나를 보며 리셉션 총각은 몹시도 뿌듯해 했고, 이불에 대한 한국 학생들의 호응이 이렇듯 뜨거우니
10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10년 후에도 이 곳 리셉션 총각들의 '이불 행진' 은 계속될 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가 단지 모국어를 들은 신기함 때문에 웃는 줄 알았겠지만 예전 기억이 있는 나로선 정말 사무치는 감회랄 밖에.
아...이불에 대한 좋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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