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Netherlands] Amsterdam

by SingerJ 2021. 11. 4.

출발일이 성탄절이었다.
'Merry Christmas' 장식된 기내식 디저트를 먹다가, 아빠가 공항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카드 주랴?"

풉. ^^ 한 무덤덤 하시는 우리 엄마 아빠지만, 나 혼자 생전 처음으로 한 달이 넘는 외국여행을 간다 하니
그때 만큼은 걱정이 좀 되셨던 갑다. 출발 직전까지도 별 말 없다가 마지막 순간에 던진 저 한마디.
나름대로는 굉장한 걱정의 표현이셨지 싶다.

사실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이 여행이 어떤 여행인가... 중학교 때부터 벼르고 별러 대학 2학년이 된 지금 드디어 실현되고 있는 순간.
틈날 때마다 가이드북을 읽어온 지도 어언 7년이다. 가보지도 않은 명소들을 이미 달달 외고 있는 상태였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면 한 순간에 하얗게 잊어버릴 듯한 기분.
그 예감은 아니나 다를까 맞아 떨어져, 암스텔담 스키폴 공항에 내렸을 때 내 머리속은 벌써 말끔 비워져 있었다.

아, 암스텔담이 나를 그토록 드라마틱하게 맞아줄 줄은... -_-;;
늦은 밤, 공항에서 나와 시내로 발을 디딘 순간 끼익- 소리와 함께 웬 차가 내 앞에 멈춰 섰고,
영화에 나올 법한 차림새의 레게빠마 흑인청년이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흰 가루가 든 비닐 봉지. +_+

오옷...마리화나와 동성결혼의 합법지대, 환락과 자유의 도시- 가이드북의 내용이 눈앞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후에도 내내 느낀 거지만, 이론과 실제는 참으로 다른 것이었다.
'로마에 가면 집시를 조심해라' 라고 수십 번 읽었으면서도,
뻔히 눈 앞에서 집시가 내 지갑을 털어 가는데 이것이 집시인지 뭔지 멀뚱멀뚱 하기만 하더라는 어느 배낭객의 명언도 있었으니.
그 순간의 내 기분도 그랬다.

환영식(?) 뿐만 아니라, 숙소 역시 암스텔담이 최악이었다.
물론 그 날은 모르고 넘어갔지만, 33일의 여행이 끝나고 나서 보니 처음 그 곳이 최악이었음이 밝혀졌던 것.

누가 뭐래도 네덜란드 만큼은 빠삭하게 알고 있다 자부할 수 있었다.
관광책자는 물론이고, 정치, 역사, 그리고 네덜란드어 교재까지.
그런 짓을 했던 이유는- 중학시절부터 흠모해 마지 않던 네덜란드 가수 제랄드 졸링 (Gerald Joling) 때문이었다.
그의 노래가 졸립다 하여 우리반 내 최측근 친구뇬 -_-;; 들은 '제기랄 졸려' 라는 별칭으로 나의 아이돌을 놀리곤 했지만
어쨌든 그 제기랄 졸려씨의 영향으로 나는 네덜란드가 보고 싶었고, 나아가 유럽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기에 가 있었다.

익히 알려진대로 운하와 자전거의 도시.
네덜란드 집들의 특징이라면- 가로폭이 아주 좁고, 대신 세로로 긴데
이것은 주택의 가로폭에 비례해 세금을 빡세게 물리기 때문이라 들었다.
집이 워낙 부족한 관계로 지상주택을 갖지 못하고 운하 위에서 보트를 집 삼아 사는 광경도 책에서 본대로 똑같았다.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뉴질랜드 여학생과 함께 렘브란트 박물관, 안네 프랑크의 집 등을 차례로 둘러 보았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한무리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그들이 와글거리고 있는 그 건물은 SEX 박물관. 아하, 그러고 보니 그 유명한 홍등가 (Red Light District) 였다.

홍등가는 사실, 사창가이기 전에 하나의 관광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한국 남자들에게는 sex 본연의 의미로만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
각종 라이브 포르노쇼,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는 언니야들 등 늑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 투성이었다.

소문대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영어를 잘 했다.
그들의 외국어 경쟁력 정책을 다큐로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정도면 모국어와 비등하게 교육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나 붙잡고 물었을 때 누구나 영어로 답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은 관광객에게 놀랄 만큼 심적 안정을 주는 것 같았다.

저녁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엽서를 썼다.
'꼭 네덜란드 가서 엽서 띄우마' 하던 나의 약속을 절대로 안 믿어주던 고등학교 친구 요것들아, 받아랏. 낄낄.
제기랄 졸려의 나라에서 날아온 엽서를 받고 그들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야, 제기랄 -.-;; 징하다 전xx."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Belgium] Brussel, Brugge  (0) 2021.11.04
[Netherlands] Zaanse scanse  (0) 2021.11.04
[33일간의 유럽일주] Prologue  (0) 2021.11.04
[USA] Baltimore, Boston, Connecticut, New York  (0) 2021.11.04
[Heidelberg] 해후-4  (0) 2021.11.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