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부터 한결 온순해진 날씨는 니스에 당도하자 더욱 온난해져 있었다. 껴입은 내복이 이젠 부담스러울 만큼.
많은 경우에 그러한 것 같다: 어떤 매력적인 존재가 혜성처럼 나타나 각광 받다가,
그보다 나은 후발주자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고...
그 결과, 처음의 그것은 오리지널로서의 의미는 가지되 예전 만큼의 실세는 누리지 못하게 되는- 그런 거.
관광지 중에서는 니스가 그런 존재일 지 모른다. 세계적인 휴양지 남프랑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도시지만,
그러나 사실 이젠, 니스보다 좋다 카더라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 라지. 니스는 아직 건재하는 휴양계의 준치인 듯 했고, 썩지는 더더구나 않아 보였다.
아쉽게도 숙소 면에서는 불운한 선택이었다 (암스텔담에 이어 후졌던 유스호스텔 2위. ㅠ_ㅠ).
꼬불꼬불한 좁은 길을 올라 가던 버스가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거였다.
띨띨한 나는 그 곳이 도착점이라고 생각해 쭐레쭐레 내려버렸고,
내려서 유스 호스텔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이 버스는 다시 떠났다. -_ㅠ
결국 한참을 걸어 올라가 숙소에 도착. 헥헥.
프랑스말은 그들의 주장처럼 그리 아름답진 않은 듯 했다. 난 이상하게도 프랑스어만 들으면 머리가 아픈 것이... -.-
특히 빠르게 지껄일 때면 머리까지 지끈거렸고 멜로디컬하거나 시적이기는 커녕, 지발 좀 조용히 해줬으면 싶기까지.
쉴 새 없이 떠드는 같은 방 여학생들을 피해 잠들기 전까지 식당에 피신해 있던 암울한 밤. 흑.
샤갈 미술관으로 가던 날은 덥기까지 한 날씨였다.
맥도날드에서 초코 밀크 쉐이크를 take out 했는데 오옷...! 너무나 풍부하고 부드러운 그 맛...!
도시마다 (식사와는 별도로) 반드시 맥도날드엘 들르곤 한다. 같은 메뉴를 먹어보며 비교를 하는데 (맥도날드 모니터링 요원 -.-)
니스의 쉐이크 만큼 감동적으로 맛있는 건 처음이었다.
그날따라 점원이 우유를 좀 더 넣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된다.
샤갈 미술관은 규모가 작고 소박한 곳이었다. 사람이 적은 평일 대낮, 그림들을 둘러보고 벤치에서 일기를 적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걸인 집시를 거기서 만난 거다.
나에게 접근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좀 에스닉스러운 복장이네, 생각했을 뿐...
그렇게 괴력을 휘두르며 구걸 아닌 구걸을 할 줄이야.
그녀는 내게 거의 탈취 수준으로 얼마간의 돈을 요구했다.
안고 있는 아이가 안돼 보여서 마음 같아선 그냥 주고 싶었으나 마침 잔돈이 없던 터라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Help me' 를 연발하며 내 팔뚝을 비틀고 늘어지는 괴력.
이것 보아요, 지금 그 말을 외쳐야 할 사람은 내 쪽인 것 같은데.. -.-;;
여인의 협박(?)은 결국 한 아저씨의 호통으로 막을 내리고... 휴.
노을이 질 무렵 해안을 걸었다.
아무리 날씨가 안 추웠다지만, 그래도 겨울인데 얇디 얇은 셔츠 차림으로, 게다가 19금 자세로 부둥켜 안고 누워있는 남녀. -.-
그 모습을 느끼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중년의 어느 아저씨, 그리고 그 아저씨를 뒤에서 째리 -_- 보는 나...
그 기묘한 삼각구도를 샤갈이라면 작품으로 승화시켰을까? -_-;;
떠나는 날에는 역에서 한 일본여인을 만나 잠시 얘길 나누었다.
시간을 착각해 기차를 놓쳐 버렸다던 그 언니는 참한 인상을 가진 예쁜 목소리의 소유자였는데,
당시 32살이었으니 지금쯤은 어느덧 중년의 나이겠구나.
독신주의자라고 하기에, "어머, 왜요?" 라고, 아주 의아하다는 듯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질문을 던지던 나였다.
서른이 넘어 결혼을 안 했다는 게 이상하게 보이던 그때. 지금의 나를 보면 과연 10년 사이 사람은 많이 변하는구나 싶다. ^^
그녀도 변해 있을까. 그리고 그 집시여인은...
제법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고 있는 10년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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