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행 기차에서 대구에서 왔다는 한 언니를 만났다.
같이 온 친구와 다투고 잠시 결별한 채 다니는 중인데 ^^ 스페인에서 재회하기로 했다는 사연을 들려 주는 것이었다.
둘이서만 다니면 틀림 없이 또 싸울 것 같으니 나도 함께 다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아 뭐, 좋아요 좋아. 평화를 위해서라면야. 헤헷.
로마에서 만났던 봉지맨이 신신당부를 한 터였다. 많은 봉지족들이 스페인에서 일을 당한 경우였다고 말이다.
스페인에 가거들랑 절대 배낭은 몸에서 떼지 말며, 수상쩍게 말 걸어오는 사람은 무조건 '쌩까' -.-;; 라고.
혼자 다니기 좋아하는 내가 대구언니의 제안을 쉬 받아들였던 건 아무래도 그의 조언 영향도 컸던 것 같다.
바르셀로나 역에서 언니들은 예정대로 재회를 했고, 언제 싸웠냐는 듯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새멤버인 나를 환영해 주었다.
(바르셀로나 뿐 아니라, 이후 그라나다와 톨레도까지 함께 했던 우리는 그새 너무 정든 나머지, 후에 눈물로 이별하게 된다.)
오...그런데. 봉지맨의 예언이 정말 적중한거다. 지하철을 탄 우리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배낭에 뭐가 묻었다나? 닦아 줄테니 가방을 내려 놓으라는 시늉을 했고, 옆에 있던 두어 명의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드는 거였다.
가방엔 진짜로 허연 밀가루 반죽 같은 게 묻어 있었지만, 사전교육이 잘 되어있던 우리는 절대 가방을 내리지 않았고,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한패였다. (한 명은 허연 물질을 몰래 묻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내려놓은 가방을 잽싸게 들고 튀는.)
아아, 고마운 봉지맨. 그의 당부가 아니었더라면 어리숙한 난 당장에 속아 넘어갔을 게 분명했다.
워매~...이리 좋은 곳이 있나...겨울이라는 계절이 무색하리만치 날씨가 딱 좋았다.
그 한겨울에도 시에스터 (낮잠 시간)를 가질 정도이니 알 만하지 않은가.
말로만 듣던 '돈 있는 거지'. 목 말라도 물 한 병 살 수 없던 무서븐 낮잠시간이었다.
바르셀로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일단은 서유럽의 단조로움을 단번에 잊게 해줄 만큼 이국적이어서 좋았다.
차를 끼익~ 세우고는 휘파람을 불어대는 놈들이 있어 인상이 나빠지려다가도
문 밖까지 나와 '아디오스, 세뇨리따' 친절하게 배웅하는 카페 아저씨들 덕에 다시금 훈훈한 기분으로 탈바꿈되길 몇 차례.
바르셀로나의 핵심이라면, 가우디와 피카소 되겠다.
특히, 가우디의 작품인 성가족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과 구엘공원은 창조적인 구조물들로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데,
사그라다 파밀리아...오...건축물에서 감동 받은 건 처음이었다. 마침 건축이 전공이었던 언니들은 슬라이드 필름을 사서 챙겼고
그저 입 딱 벌리고 '이것이 진짜 인간의 작품이냐' 를 중얼거리던 우리.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청과시장이 명물이었는데, 큼직하고도 향기가 취할 듯한 오렌지 한 자루가 단돈 500원.
나와 언니들은 오렌지를 푸대 수준으로 사서 배낭에 나눠 넣었고 몬주익 언덕에서의 그 오렌지 파티는 향긋한 추억이 되었다.
바르셀로나 뿐 아니라, 그라나다와 톨레도에서도 그 오렌지는 우리 셋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또한 바르셀로나가 짙은 오렌지향으로 내 기억 속에 남게 된 이유가 되기도.
길 가던 한 어린아이를 보고 너무 귀엽다고 언니들이 꺅꺅거렸다.
할아버지와 산책 중이던 그 꼬마의 이름은 '안토니오' 였는데 사진을 찍자는 우리의 제의에 막대사탕을 흔들며 화답해 주었다.
그 애가 지금은 벌써 10대 후반의 청소년이 다 되었겠구나.
확실히 세월은 흘렀다... 하지만 추억이 고이 남아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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