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져 자고도 싶고, 소파에서 햇빛 쪼이며 멍 때리고도 싶고, 반찬도 만들어야 할 것 같고, 커튼도 빨았으면 좋겠네 싶고...주말이란 참 묘한 존재. 해치우고 싶은 일은 많은 반면 또 아무것도 하고 싶지는 않은.
왕복 5시간이 걸리는 브베(Vevey)로의 마실은, 그래서 주말계획 우선순위에서 매번 밀려나기 일쑤였다. 그래도 살다보면 콧바람 쐬고 싶은 소망이 게으름을 이기는 주말도 한번쯤은 오는 뱁. 이번처럼.
호수 말고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곳이나 그 자체로 이미 많은 관광객을 끌어당긴다. 몽트뢰에 프레디 머큐리가 있다면 이 곳은 찰리 채플린. 그가 말년을 보낸 도시라고 한다. 그리고...독일출신 약사 네슬레가 창립한 분유회사에서 오늘날 국제적 식품회사가 된 네슬레(Nestle)의 본사가 있다는 것 정도. 아, 어릴 적 치던 피아노책에 '브베의 연인' 이라는 재미 없는 ^^ 곡이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역동적인 멋진 조형물도 있다. 체력장 멀리던지기 만점자의 모습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나..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곳의 상징은 바로 이것.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뜬금 없는 포크. 물안개 속에서도, 노을 속에서도, 혹은 조용히 책 읽는 사람 앞에서도 합성처럼 서 있는 그 모습이 백조들 노니는 주변경관과 묘한 부조화를 일으키면서 몹시 익살스럽기도 하고 햇빛에 빛나는 모습이 한편 예술적이기도 해서 한참동안 시선을 빼앗는다. 피사의 사탑이나 피라밋 앞에서 관광객들이 찍곤 하는 전형적인 사진과 마찬가지로 이 앞에서도 많은 이들이 설정사진을 연출한다. 포크에 등 찔려 죽는 사진이라든가 음식 찍어먹기 등. 식품박물관 10주년을 기리기 위해 디자인된 작품이라고 한다.
역시 호수보다는 산이지. 다음번엔 안 온다, 볼 것도 없고. ← 그래놓고 또 찾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라이프치히 기숙사 근처의 숲속을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나타나던 그 호젓한 호수가 가끔 그리웠다. 나만의 느낌일지는 모르나 스위스에는 어쩐지 우수가 없다. 불안한 미래를 앞둔 유학생 시절이라 그랬는진 몰라도, 독일에서는 생각이 많았고 보이는 풍경까지 덩달아 그랬는데 스위스에 오니 포닥생활은 (너무나 의외로) '신나는 이층버스' 틴에이저 같은 나날에, 자연은 fancy 하며, 좋게 말하면 그늘 없고 나쁘게 말하면 깊이가 없는- 나 사는 방식도 그에 맞추어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었다.
독일이냐 스위스냐 택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아마 난 스위스를 택하지 않을까 가끔 상상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많이 다르겠지. 유학생 시절의 나는 좀 더 새로운 미지의 곳을 원하기 때문에 스위스를 택할 거고, 지금의 나는 '수입의 40%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독일은 글쎄'- 라고 말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지. ^^
레만호를 찾게 되는 이유가 어쩌면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이 근방에 오면 어렴풋하게나마 라이프치히 시절의 향수가 되살아나고 '생활인' 내가 아닌 유학생 나- 겁 먹었지만 설렘이 있었던- 좀 더 풋풋했던 그때를 추억하게 되어서.
생활인도 꿈꿀 수 있다. 설렐 수 있다. 미지의 앞날도 여전히 있다. 불안함도 원한다면 그것도 얼마든지 있다. ㅎㅎ 그런데 왜 언제부턴가 나는 직장인의 삶은 단순하고 낭만 없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편견일랑 저 포크에 찍어 꿀꺽 삼켜버리자. 생전 처음 사본 분홍색 트렌치코트, 역시 네이비가 나을걸 그랬지 더이상 후회하지도 말자. 봄이 왔다. 이제 얼마 후면 이 곳에도 꽃이 만발할테고, 그때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그 봄풍경에 어울리는 좀 더 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생활인의 모습이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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