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Morocco] Marrakech (1)

by SingerJ 2021. 11. 6.

휴가의 마지막날은 안 그래도 서글프기 마련인데 감기까지 지독하게 걸려버렸다. 나한테서 옮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은 사메도 자기몫의 감기에 걸려온 듯.. 1분마다 재채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상황. 나는 내일부터 출근하고, 사메는 원래 오늘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생긴 면접 때문에 돌아가는 걸 일주일 미뤘다. 결혼했어도 아직 항상 같이 사는게 아니다 보니 사메가 집에 있으면 큰 곰 한마리가 어슬렁거리는 이 느낌이 영 익숙치 않다. 곰이 핸드볼 시청을 하는 동안 그럼 나는 여행지 이야기나 적어볼까 한다.

모로코 마라케쉬 (Marrakech) 에서의 일주일.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가 본 곳 중 볼거리 먹을거리가 젤로 맘에 안 들었던 곳. -.- 흙먼지, 음침한 막다른 골목길, 사람은 또 왜 그리 많으며 대로변마다 말오줌이 강을 이루고. 아흐.. 이 근방에 가보는 게 처음이었더라면 아마 이국적인 걸로 커버되었을 지 모르겠는데, 두어 번 봤다고 이젠 사막이나 낙타 같은 것도 새롭지 않다 보니.. 그걸로는 이 마음 사로잡을 수 없어라...오직 냉혹한 평가만이. ㅋ

마라케쉬 여행을 예약하고 나서 갈까 말까 몇 달을 결정 보류 상태였다. 우리가 가기로 한 시점에 아프리카 챔피언컵 축구대회가 열릴 예정이었고 마라케쉬도 개최도시 중 하나였는데 에볼라 창궐 국가들도 참가할 예정이어서...하필 그때 가야 하나 우려가 되었더랬다. 결국 모로코는 에볼라를 염려해 대회 개최를 포기했고 우리는 예정대로 휴가를 진행했다는 뒷 이야기.

묵었던 호텔은 전통 모로코 스타일 주택이었다. 상냥한 프랑스인 두 남자가 주인으로, 오래된 이 집을 구입해 호텔로 운영한지 3년 정도 되었다 한다. 방은 고풍스럽고 깔끔하고 다 좋았으나 유령이 있지 않을까 나도 사메도 상상했다. 오후에 잠깐 눈을 붙였는데 침대 옆 전등이 갑자기 혼자 팟- 하고 켜지는 거였다. 사메가 켠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밖에서 인터넷 중이었다. 그리고 사메는 이 방에서 묵는 일주일 동안 매일밤 전속력으로 달리는 무사 꿈을 꿨단다. 아무튼 모를 일임.. 나쁜 유령까진 아니고 말 달리던 모로칸 용사의 혼백 쯤일지 모른다고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 참, 번쩍이는 황금(?) 세면대가 인상적이었는데 사진을 안 찍었다. 배낭 하나만 허락되는 특별가 비행기표를 샀던지라 샴푸 같은 건 전혀 갖고 갈 수 없었다. 호텔에서 공급하는 목욕용품에 의지해서 잘 쓰긴 했는데...멍청한 나는 첫날에 또 쇼를 좀 했다. 아마 메이드의 실수였는지 샴푸 (노란색)과 바디로션 (흰색)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는데 난 그걸 철썩같이 믿은 것. 샤워 후 바디로션 (사실은 샴푸)을 몸에 바르며 왜 미세하게 거품이 일까 의아스러웠지만 꿋꿋이 온몸에 다 바름. 샴푸 (= 바디로션)가 어째 거품이 하나도 안 나냐, 천연샴푸는 이래서 문제야 하며 머리도 어렵사리 감고. -_-;; 사메가 보고는 왜 이게 바뀌어 있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병 위치를 바꾸는데...아...왜 나는 나의 눈과 촉감보다 적혀져 있는 글자를 더 믿는 것이냐. ㅠㅠ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음식은 비슷비슷할거라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겉으로는 그게 그거 같으나 어쩜 그리 다른 맛인지. 시리아 음식은 맛있었고 이집트 음식은 먹을 만 했다면, 모로코는 느끼하거나 들척지근하거나 아님 둘 다이거나..으으... 여행 내내 어렵지 않게 소식할 수 있었다. 밥 먹는데 육감적인 벨리댄서들이 가슴과 엉덩이를 바로 옆에서 마구 흔들고 일부 아저씨들은 브라에 돈 찔러넣기. -_- 국적 불문하고 하여간 남자들이란.

박물관 궁전 등 여러 곳을 방문했으나 기억에 남는 곳은 하나도 없고...그나마 재래시장이 제일 재미있었다. 특히 가죽제품의 천국. 우리나라에 들여오면 빈티지 스타일 쯤으로 비싸게 팔릴 법한 가방, 가죽자켓, 샌들이 몹시 저렴하다. 아, 그리고 아르간 오일. 좀 사다 달라는 큰시누의 부탁에 큰 병을 사서 나눠 담아 달라 했다. 무사히 배낭에 넣어 갈 수 있을까.

프랑스 디자이너 마조렐이 꾸몄다고 해서 '마조렐 정원' 이라 불리는 곳. 한때 입생로랑의 소유이기도 했다는데. 저 파란색은 특별히 '마조렐 블루' 라 불린다고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