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었던 아파트에 쌓인 유감이 많아서 흉을 한번 보고 지나가야겠다.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 수도) 에서 숙소를 찾다 보면 호텔보다는 아파트가 더 많이 눈에 띈다. 세간이 다 있는 아파트를 통째로 빌려주는. 우리가 고른 아파트는 시내 중심가에 있어 여러모로 편리할 뿐 아니라 널찍하고, 깨끗하고, 좋았다. 문제는 주인 아주머니의 성의 없는 서비스.
쪼매난 수건 딱 두 장 주고서는 새 수건은 이틀 후에 주겠다고 할 때부터 -_-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게다가 아침식사는 직접 해먹으란다. 냉장고 속엔 식빵 한봉지, 치즈 한팩, 우유, 오렌지주스, 버터 (아니고 마가린이었지, 참). 식탁 위에는 갈변한 바나나와 쭈글쭈글한 사과 두 알. 커피머신은 청소를 한 번도 안한 것 같아 보이고, 커피도 개봉한 지 오래되었는지 커피향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침식사가 포함된 거금의 숙박비를 받아 놓고선 직접 해먹어야 한다는 조건을 처음부터 명시하지 않은 사실에 화가 났다. 아침식사 비용이란, 비록 빵 한조각과 커피 한잔 뿐인 아침일지라도 빵을 굽고 커피를 내려 차려주는 그 노동력에 대한 댓가가 아니던가 사실. 게다가 재료마저 부실하니 결국 따로 장을 봐야 했다.
사메는 주인 아주머니의 애꿎은 국적(프랑스)을 언급한다. 평소 프랑스인은 무질서하고 게으르다는 편견을 갖고 있어서 ㅋㅋ. 수건은 매일 갈아달라고 하고, 아침식사 건도 우리에게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겠다고 의견을 피력했지만, 말로는 흔쾌히 그러마 하고는 감감 무소식인 아주머니.. 아무래도 이 아파트 평판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나는 무엇보다도...휴가 중에도 직접 해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솔직히 휴가의 제일 큰 의미가 뭔데. 밥 안 하는거 아닌가...? -ㅅ- 점심 저녁이야 밖에서 먹는다지만 휴가 와서 다 차려진 아침밥을 먹는건 또 나름 특별한 기분인건데.. 애초부터 직접 우리가 해먹을 계획이었으면 화 까지야 나진 않았을텐데 도착해서야 알게 된 사실이라 아줌니가 너무나 미웠다. -_-
자기가 고른 아파트니까 빵 굽고 계란 후라이도 자기가 다 하라고 사메를 구박해보지만 그래봐야 제 살 깎아먹기. 나중에 집에 가서 최저평점을 남겨버리겠다고 사메는 사메대로 실망이 컸던 듯.
이 날은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그간 쉴 새 없이 돌아다녔으니 오늘은 좀 여유 있게 쉬기로. 노천온천 '블루라군' 으로 향했다.
아이슬란드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한참 전이었다. 꽃보다 청춘도 아닌, 이지젯이 우리 읍내에 직항 편성을 한 작년도 아닌, 그보다 훨씬 전. 국민학교 6학년 때던가. 울 아부지가 들여오신 여행도서 한세트였다. 출판사를 시작한 어느 동창의 실적을 올려주고자 사오신 거였는데 중국, 영국, 티벳, 미국, 그리고 마지막권이 북유럽 편이었다. 두 페이지에 걸쳐 파노라마로 펼쳐진 블루라군의 사진이 그 책에 있었다.
책은 상당히 고가였고, 12개월 할부로 들여온 아빠는 엄마에게 단단히 바가지를 긁혔지만, 책 자체는 내 막눈으로 보기에도 상당한 양질이었다. 작품 수준의 훌륭한 사진과 여행다큐를 보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더랬다. 직접 와보니 솔직히 사진이 훨씬 좋구나 싶지만 ㅎㅎ 어릴 적에 봤던 그 곳에 진짜로 와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밀키블루 색을 내는 원인은 바로 이것..
한쪽에서 이 화이트 머드를 나눠준다. 얼굴에 발랐다가 씻어내면 되는데, 아이러니인 것은 이 팩을 한 후에 피부가 어째 더... -.-;;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던지 이 머드를 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온천 내 쇼핑센터는 파리 날리는 것 같았다. 우짜스까.. -.-a
숭하지만 예시로 한 컷.
화산에서 나오는 지열과 온천수가 레이캬비크 집집마다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 욕실도 천연난방으로 뜨끈뜨끈. 온수에서 유황냄새가 좀 나긴 하지만 (처음엔 물냄새인 줄 모르고 '아니 이 사람이 왜 오늘따라 방귀 -_-;; 를 이리...' 했다) 머리를 감으면 부들부들해진다. 이 지열을 이용해 그린하우스의 에너지를 충당한다고 하니 화산과 더불어 사는 삶이란 위험한 동시에 혜택도 많구나 싶다.
한여름 성수기인데도 거리가 참 한산했다. 다니는 차들도 거의 없으니 고양이들도 어찌나 여유롭게 길을 건너고 마실을 다니던지.
북쪽나라의 여름은 좀처럼 해가 지지 않아 밤 11시경은 되어야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온통 황금빛으로 물드는 호수를 보고 있으려니 아이슬란드 맥주 상표 'Gull (황금)' 은 아마 이 풍경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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