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를 꼭 보고 갈 수 있길 바란다는 호텔직원의 말에 "못 보면 다음에 또 오죠 뭐, 하하!" 라고 짐짓 쿨한 척을 했지만, 만일 진짜로 못 보고 돌아와야 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싶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북극 (또는 남극)에서 최대한 가까운 위치. 둘째, 맑은 밤하늘. 오로라 지수가 0에서 9까지 올라갈수록 볼 가능성이 커지는데, 북쪽으로 갈수록 낮은 오로라 지수에서도 보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우리가 머물렀던 사리셀카는 오로라 지수 1-2 정도로도 충분한 위치에 있다.
마음에 들었던 통나무집을 떠나 이날부터는 '오로라 캐빈' 에서 묵었다. 유리천장이 있는 이글루로, 침대에 누워 편하게 오로라를 보라는 컨셉의.
빈 통나무집이 더이상 없어 어쩔 수 없이 옮긴 방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 이글루야말로 이 동네 호텔들의 나름 야심작인 모양이었다.
비싼 요금에 비해 정말이지 맘에 안 드는 방이었지만, 새벽에 문득 눈을 떴는데 머리 위로 오로라가 보이던 순간만큼은 불만을 잠시 잊었더랬다.
숲 속 호텔이라 그런지 아침과 밤엔 정말로 고요했다.
가끔 사르락 미끄러지는 스키나 썰매소리가 들려올 뿐.
별이 총총 뜨기 시작한다. 하늘이 맑다는 증거이므로 좋은 징조다. 오로라를 더 선명하게 보려면 캄캄하고 시야가 트인 곳에서 기다리는게 좋다. 빛을 온전히 보기 위해선 먼저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뭔가 '오늘의 교훈' 스러운 것. ㅎㅎ
오로라라는 것은 과연 어떤 식으로 등장할 지 궁금했는데, 그것은 마치 희미한 초록띠처럼 스윽 나타났다. 그리고는 시시각각 모양과 색을 바꾼다.
카메라 속에서 더욱 선명한 빛을 발했다. 마치 백지처럼 보이는 밀서를 촛불에 그을리자 편지의 내용이 또렷이 나타나는 사극의 한장면처럼.
처음 겪어보는 영하 30도 추위에 카메라는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LCD가 맛이 가더니, 이번엔 배터리를 갈아끼웠을 뿐인데 갑자기 막 초기화를 시작.. '영어를 기본언어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서머타임을 적용할까요?' 정신 차려라 아그야! -o-;;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언능 하늘을 찍어야 하느니!
삼각대를 쓰면 오로라 자체를 찍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흔들려 찍힌 사람들 때문에 채택되지 못한 사진이 많다. 기나긴 셔터속도 (평균 10-15초) 동안 우리는 물론 주변인들까지 꼼짝도 않는다는건 불가능인지라 수많은 심령사진이 탄생하였다. ㅎ
첫번째 오로라는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자다 깨서 보았고, 두번째는 물 마시려고 새벽에 깼다가 유리천장 위로 보이길래 뛰쳐나가서 보았다. 세 번째는 돌아오기 전날 밤, 잘 가라는 인사라도 하듯 꽤 오랫동안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별 느낌 없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늘 그렇듯 '어메이징' 을 외치며 호들갑인 외국인들 틈에서 '아~ 저거구나~..' 하고 말 줄 알았다. 그런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순간의 느낌을. 지금을 함께 한 상대는 예외 없이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친구, 가족, 연인, 설사 5분 이상 같이 있기 싫은 그 누구였다 해도 이 순간을 공유한 기억만큼은 특별하고 강렬하게 각인될 것 같다.
샛별공주와 오로라 공주는 정말로 친구사이인게 맞았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이 뜬금 없이 주장하던대로 말이다. 맑은 밤하늘에 사이좋게 함께 나타나는 단짝사이.
이미 두 번이나 보았음에도 마지막 날 밤엔 수시로 하늘을 살피느라 잠을 설쳤다. 잠든 사이 홀연히 나타나 넘실거리다 사라져버릴까봐. 도착하자마자 오로라를 만나 기뻐하는 어느 커플에게 호텔직원이 뿌듯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Welcome to the far N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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