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Doc 생활을 시작한 이후 내 상태는 <키다리 아저씨> 주디의 대학 초년시절과 비슷한 것 같다. 누군가가 <파랑새>의 작가 마테를링크 얘기를 꺼냈을 때 "우리학교 학생이니?" 라고 주디가 물었던 것처럼, 분명 우리 전공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내게는 너무나도 생소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기분은.. 대략 복잡하다. -_-
그래도 어쨌거나 이 현상은 정상이라고 위안 삼고 있다. 박사 타이틀은 연구를 수행하는 능력에 대해 수여된 것이지 현재 지식량에 대해 내려진 게 아니고, 박사라고 해서 안 해본 일을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래도 그놈의 박사가 어찌나 부담이 되는지 때로는 내가 박사인 걸 제발 아무도 몰랐으면 싶을 때가 있다.
읽어야 할 전공책 목록을 만들어서 틈나는 대로 읽고 있는데 내가 고3 시절 지금처럼만 공부했더라면 전국수석을 했지 싶다, 쩝. 실험 한 단계를 끝낼 때마다, 한 해 한 해가 갈 때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참으로 사무친다.
문제를 미리 알고 시험 볼 수 없는 것처럼, 훗날 무엇이 나에게 중요해질지 미리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인생을 산다는 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일까. 어르신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얼마나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을까. 그들은 그들의 지난 시간에 대해 얼마만큼의 아쉬움을 갖고 있을까. 새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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