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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Prague-1

by SingerJ 2021. 11. 1.

독일에 온 지 3년이 될 때 까지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이제 내게 유럽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는 신선감의 부재가 그 이유가 아니었을지.


그러나 그 부활절 연휴의 프라하행은, 새삼스레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떠난다는 건 언제라도 다시금 설레는 일이라고. 라이프치히에서 프라하까지는 기차로 불과 두 시간 남짓이다. 거 참...좋구나 좋아. 오고 가는 시간 길지 않아 좋고, 오로지 유스호스텔 뿐이던 10년 전과는 달리 양질의 민박들이 객들을 환영하니 말이다. 10년이면 역시 강산이 변하는구나.


그렇게 어쩐지 감개무량한 기분으로 프라하에 도착한 저녁, 픽업을 약속했던 민박집 아저씨는 혼자 찾아 오라는 엉뚱한 말을 하시고 -_- 나는 그 배신(?)에 분개하는 와중에서도 트램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에 이미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이런...1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게 있기 마련이니.. 고거이 바로 나의 길치 기질이더라, 그거다.


밤길의 똑같은 골목길은 쥐약이라고오! +o+;; 아니 뭐 이런 공중전화 하나 없는 골목이 다 있노. 흑흑. 하얀 조약돌을 하나씩 뿌리며 오지 않는 한 번지수도 잘 안 보이는 똑같은 집들을 구분해 낼 재간이 내게 있을 리가. 밤은 더욱 깊어지고, 이제 길은 쥐죽은 듯 적막하다. 아, 누가 있어야 물어보지. 다급해진 길치는 뻔뻔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데나 불 켜진 집 초인종을 눌렀다. 이층 창문을 열고 할머니가 뭐라뭐라 하시고, 이어서 한 청년이 문을 열고 나왔다. 민박집 주소를 보여주며 물어보니 바로 옆 골목이라 한다. 그리고는 친절하게도 밤길을 함께 걸어 데려다 주었다. 이후에도 느낀 거지만, 아~ 뭐랄까. 프라하 남자들 내 타입이야. (헤벌쭉) 체코에 살어리랏다!

혼자 밤길을 오는데도 픽업을 안 해준 주인 아저씨, 그 청년과 문 앞에서 헤어지는 나를 맞이하며 한 마디 한다. "아니 그새 벌써 하나 사귀었어?" -,.- 한 번만 더 기분 상하게 하면 쏘아주리라 다짐을 하며 들어서는데 아...아늑한 기운에 몸이 스르륵 녹아버렸다. 아직은 쌀쌀한 봄밤, 벽난로가 켜진 거실.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Josh Groban의 노래. 주인 아주머니가 내주는 쟈스민차로 몸을 녹이며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화 주인공마냥 기대에 잠겨 그 날 밤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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