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미국에서 온 지인의 취리히/베른 구경을 도와주며 하루를 보냈고
오늘은 (아직 시차에 어정쩡하게 적응한 탓에) 새벽부터 일어나 빨래, 청소, 벼르고 별렀던 서랍장 정리 따위를 했다.
그러고 나서 커피를 한 잔 들고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서 눈팅을 하는데
'크리스마스에 어쩜 이럴 수가 있죠, 우울해요' 또는 '우리집 크리스마스 파티 구경하세요' 류의 사뭇 양분화된 사연들. 하하.
언제부턴가 기독교 국가가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크리스마스란 뭔가를 해야 하는 특별한 날이 된 듯.
그러고 보니 내겐 초등 5학년-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에 관한 충격적인 비밀폭로가 이루어졌던 ^^ - 이후로는
성탄절은 그다지 의미를 갖지 못했고 특별하게 보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애인이 없었을 때나 있을 때나.
이 곳에서는 성탄절 3-4일 전까지 분위기가 점차 달아오르다 막상 그 날이 되면 쥐죽은 듯 고요해지므로
모든 잔치와 송년인사는 이미 끝나고 크리스마스 당일엔 솜사탕 녹아 없어지고 난 나무젓가락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래도 서양인들에게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범국민적인 축제날임에 틀림 없고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에 설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달콤말랑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상술에 좀 놀아난다 싶더라도, 이 짓을 꼭 해야 하나 싶더라도,
특히 애들이 있는 집은 서양이건 동양이건 성탄절 분위기는 한 번 잡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하필 이런 날 헤어지고 슬픈 커플, 이 날을 증오하는 솔로부대,
가난과 고민으로 크리스마스 따윈 관심 없는 사람들, 아픈 이들, 혹은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이들-
모두에게 따뜻한 연말과 복된 새해가 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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