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는데 괜히 울적하다. 사메의 비자도 나왔고, 염려했던 아부지 건강검진 결과도 괜찮고...사는게 무난무탈한데 왜 기분은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고시에 매달리다 나이만 먹은 꽉 막힌 범생이 거듭된 낙방 끝에 생계차 기업에 입사했다. 뜻밖에도 거기서 자신의 숨어있던 적성과 재능을 발견- 전략기획의 천재- 그리하여 제2의 삶을 찾았다는 스토리. 그 이야길 어디선가 듣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과연 그런 재능이 단 한가지라도 있는가. 그게 없다면 적어도 미치도록 하고 싶은 무언가는 있는가.
내 전공을 좋아했고, 그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안정적 삶을 지탱해준다는 점에서 언제나 내 일에 감사한다. 하지만 '너는 이 일을 해야만 하겠구나'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하거나, 그 어떤 쓴맛을 감수하고라도 이 일을 꼭 하고 싶은 이유가 있는가. 내게 주어진 범위 안에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그냥 집어든 느낌. 고르고 나서 보니 괜찮았고, 그만둘 만큼 딱히 싫은 점도 없고, 앞으로 계속해도 무방할 것 같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전에도,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심장 뜨거운 애착을 내 일에 가져보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허전하게 한다.
그렇게 '운명적인 직업' 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느냐고, 때로는 좋고 때로는 회의를 느끼며...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하겠지만 그 말이 별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나도 모르는 천부적 재능이 지금껏 내가 한번도 관심 가져보지 않은 어떤 분야에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나에게 그런 것 따위는 처음부터 없는 건지. 타고난 재능이 한가지도 없거나, 그 재능을 평생 발견하지 못하거나- 어느 쪽이 더 안타까운 삶일지. 등 따시고 배부르니 찾아오는 쓸 데 없는 방황인지, 아니면 진지하게 들어야 할 내 마음의 소리인지.
나이 마흔 다섯이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 나이가 불과 몇 년 후로 다가온 지금, 아직도 나에게 도전정신이 살아있는지 의문스럽고 답 없는 질문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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