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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Let it go

by SingerJ 2022. 1. 16.

가을비가 내린다. 젖은 공기냄새를 맡으며 걷노라니 고교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어떤 이들에겐 천금을 주고라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일 수도 있겠고, 나를 포함한 또 어떤 이들에겐 졸업날이 그저 신나기만 했던, 그다지 돌아가고 싶진 않은 고교시절이기도 하겠지.

 

나의 고교시절- 특히 2-3 학년때의 기억은- '수학 두 문제' 라는 한마디로 대변될 수 있을 것 같다. 총 15반이었는데 그 중 11반이 문과, 4반이 이과. 여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과사랑 현상이긴 한데 우리학교의 문제는, 쌤들의 이과편애로 성적 상위권 학생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이과반에 다 몰아버렸다는 것. 그 결과, 같은 사람이 두 달 연속 이과 1등을 하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상위층이 지나치게 두터워져버려서 7명이 받을 수 있는 내신 1등급을 위해 고만고만한 낙타들은 그 바늘구멍을 뚫느라 상당히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각 반에서 1-2등만 추려도 총 8명. 그 중 한 명은 1등급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 따라서 중요한 시험에서 재수 없게(?) 반 2등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는데, 그 결과는 수학이 판가름하곤 했다. 다들 웬만하면 잘 안 틀리는데다 국어 영어는 좀 틀린다 해도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진 않지만 수학은 달랐으니까. 그래서...수학을 한 문제 넘게 틀린다는 건 곧 재앙(...)을 의미했다. 자력회생은 불가하고 다른 경쟁자들의 실수만 기다려야 하는. 고 2-3학년 내내 그놈의 수학 두 문제 틀릴까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다른 풋풋한 추억은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ㅠ_ㅠ 그 x고생을 해서 1등급을 받긴 했으나 그 중 1-4등이 약속이나 한 듯 대입에서 떨어져 후기대를 갔다는 웃픈 스토리도 있다. ㅠ_ㅠ

그때와 똑같은 비냄새가 나는 가을날. 하지만 지금은 수학 몇 개 틀렸나가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 이 작은 행복에 고마워해야 할 지, 아니면 좀 더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못한 내 고교시절을 애도해야 할 지 잘 모르겠는 밤. 어쨌거나 이제는 흘러가버린 옛날 이야기.. 렛잇고우, 렛잇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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