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연말 보너스의 날이었다. 우리 중간보스 헬렌이 개개인의 사무실로 보너스 통지서를 신나게 배달하러 다녔다.
편지의 결론만 말하자면 단순하다. 보너스가 지급될 것이며 연봉이 새해부터 인상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읽는 동안 왠지 모르게 꽤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우선, 대기업인 예전회사에서는 대량 찍어낸 편지가 우편으로 날아오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회사는 보스들이 갓 서명한 잉크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원본을 직접 배달한다는 점이 달랐고 편지를 받는 사람의 업무와 개별상황에 맞춰 세세하게 personalize 된 내용, '그래 잘 했으니 떡고물을 좀 나눠주지' 가 아니라 공손하게 진심으로 감사 받고 격려 받는 기분. 마음이 담긴 손편지라도 받는 착각이 들어서 새삼스레 작은 뭉클함 같은 게 밀려왔다.
무엇보다도 만감을 교차하게 만들었던 점은 나를, 내가 한 일들의 내용을, 그 일을 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을,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를 직접 이해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편지내용이었기에 내가 무엇을 얼만큼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고 있는지를 전부 이해 받고 있다는 게 전해져와서 순간 왈칵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래, 나 속물이라 보너스도 연봉인상도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 내가 바라던 게 이런 거였구나 라고 순간 깨달았다. 나 이만큼 일 많이 하고 수고하니까 알아달라는 게 아니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 내 팀의 동료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어떤 애로사항이 있고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헤아리는 마음. 그게 그리웠던 것 같다.
별 불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전 우리 팀장 때문에 이직을 결심했던 그 날을 기억한다. 목요일 아침이었더랬지. 이직 생각 같은 건 아직 먼 훗날 일로만 느껴지던. 나를 부르더니 프로젝트 하나를 더 맡으라고 말하던 우리 마녀팀장. 단순히 일이 많아지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게 결코 아니었다. 단지, 그 부탁인지 명령인지 모를 한마디는...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 팀장은 나한테 하면 안되는 거였다. 그 상황에서 내게 일을 더 추가한다는 것은 곧 내가 현재 무슨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그 무지한 자가 바로 내 보스, 매일 나한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보고를 듣는 바로 내 보스라는 사실이 슬펐고 내가 그간 쇠귀에 경을 읽었네 싶어 그렇게도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뜬구름 같기만 하더 이직생각은 그 순간 순식간에 확고하게 굳어져서 다음날부터 바로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했던 지난 봄의 그 목요일...아직 기억이 또렷하다.
그래선지 더더욱 지금 회사의 편지는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잖아? 그거 진짜라오, 마녀팀장. 그 한마디에서 마음이 느껴진다면...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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