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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따뜻한 말 한마디

by SingerJ 2022. 1. 16.

어제는 연말 보너스의 날이었다. 우리 중간보스 헬렌이 개개인의 사무실로 보너스 통지서를 신나게 배달하러 다녔다.

편지의 결론만 말하자면 단순하다. 보너스가 지급될 것이며 연봉이 새해부터 인상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읽는 동안 왠지 모르게 꽤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우선, 대기업인 예전회사에서는 대량 찍어낸 편지가 우편으로 날아오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회사는 보스들이 갓 서명한 잉크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원본을 직접 배달한다는 점이 달랐고 편지를 받는 사람의 업무와 개별상황에 맞춰 세세하게 personalize 된 내용, '그래 잘 했으니 떡고물을 좀 나눠주지' 가 아니라 공손하게 진심으로 감사 받고 격려 받는 기분. 마음이 담긴 손편지라도 받는 착각이 들어서 새삼스레 작은 뭉클함 같은 게 밀려왔다. 


무엇보다도 만감을 교차하게 만들었던 점은 나를, 내가 한 일들의 내용을, 그 일을 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을,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를 직접 이해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편지내용이었기에 내가 무엇을 얼만큼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고 있는지를 전부 이해 받고 있다는 게 전해져와서 순간 왈칵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래, 나 속물이라 보너스도 연봉인상도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 내가 바라던 게 이런 거였구나 라고 순간 깨달았다. 나 이만큼 일 많이 하고 수고하니까 알아달라는 게 아니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 내 팀의 동료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어떤 애로사항이 있고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헤아리는 마음. 그게 그리웠던 것 같다.

별 불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전 우리 팀장 때문에 이직을 결심했던 그 날을 기억한다. 목요일 아침이었더랬지. 이직 생각 같은 건 아직 먼 훗날 일로만 느껴지던. 나를 부르더니 프로젝트 하나를 더 맡으라고 말하던 우리 마녀팀장. 단순히 일이 많아지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게 결코 아니었다. 단지, 그 부탁인지 명령인지 모를 한마디는...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 팀장은 나한테 하면 안되는 거였다. 그 상황에서 내게 일을 더 추가한다는 것은 곧 내가 현재 무슨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그 무지한 자가 바로 내 보스, 매일 나한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보고를 듣는 바로 내 보스라는 사실이 슬펐고 내가 그간 쇠귀에 경을 읽었네 싶어 그렇게도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뜬구름 같기만 하더 이직생각은 그 순간 순식간에 확고하게 굳어져서 다음날부터 바로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했던 지난 봄의 그 목요일...아직 기억이 또렷하다.

 

그래선지 더더욱 지금 회사의 편지는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잖아? 그거 진짜라오, 마녀팀장. 그 한마디에서 마음이 느껴진다면...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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