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에 이어 계속하자면...그 후로도 빵조각은 몇번이나 더 발견되었다. 패턴은 똑같았다. 누가 참 할 일도 되게 없구나- 라고 우리는 여전히 무시했고, 이후 얼마간은 잠잠했다. 그런데 지난 주, 사건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선물' 이 등장한 것. 식물의 꽃봉오리는 아니고 그...싹눈이라고 해야 하나? 투명한 비닐로 제법 꼼꼼하게 싸기까지 해서 우리집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이 날을 계기로 두 가지가 확실해졌다. 역시 '흘린' 게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동물이 아닌 사람이 분명하다는 것.
그로부터 불과 이틀 후, 손님이 또 한번 다녀갔다. 이번엔 벌레모양 비슷한 식물줄기였는데 스카치테잎으로 문고리에 감아 붙여 놓았더라. 문 앞에 놓는 단계를 넘어 이번엔 우리집 문고리를 직접 만져가며 붙여 놓은 것이다. 좀 우습지만 나는 이번건을 진짜 도발로 받아들였다. 제딴에는 나름 대담해진 것이다...이 미친놈 또는 미친뇬은. 다음번엔 문틈으로 밀어넣는 발전을 하지 말란 법 없다고 말하면 내가 너무 오바인가.
더더욱 신경 쓰이는건, 내가 퇴근할 때는 분명히 없었는데 한 시간 정도 나보다 늦게 퇴근한 사메가 발견했다는 사실이었다. 복도에서 나는 소리는 집안에서 쉽게 들린다. 즉, 집에 있던 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살금살금 작업을 완수하는 용의주도함도 갖췄단 얘긴데. 알게 뭐람.. 우리가 '선물' 을 발견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어쩌면 몰래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
날짜를 기록해두지 않은 것도, 증거를 모아두지 않은 것도 후회되기 시작한다. 감시카메라를 문 앞에 설치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건 모든 이웃들의 동의가 있어야만 할 수 있단다. 따라서 범인을 잡는 제일 확실한 방법은, 24시간 문구멍으로 지켜보고 있거나 증거물을 획득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겠다. 문 앞에 메모를 써붙여 범인을 조심하게 하고 싶진 않다. 현장을 딱 잡아서 도대체 뭐하는 중인지 직접 물어보고 싶을 뿐이다. 정말로 궁금해서.
정신적 결함 있는 어느 가엾은 이의 사소한 장난일 뿐이라며, 그냥 무시하자는 게 남편의 의견인데...난 어쩐지 그러고 싶지가 않다. 스위스 커뮤니티에 글을 한번 올려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모두들 수상하단다. 거 봐 이 사람아 내가 왕오바 하는게 아니야. 의도가 무언지, 선물의 내용이 무언지는 둘째 문제고, 남의 집을 반복적으로 거슬리게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범죄야..
영국의 EU 잔류냐 결별이냐를 놓고 온 유럽이 흥분 대기상태인 지금, 나 또한 다른 이유로 흥분만땅 스탠바이다. 자, 범인아 와라! 한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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