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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직은 상상할 수 없는

by SingerJ 2022. 1. 26.

뭐든 오래 쓰다 보면 고장날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 대상이 자기자신, 또는 가족의 건강이 된다면 그리 당연 덤덤하게 얘기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주름이 지고, 흰머리가 늘어나고, 눈이 침침해지고...비교적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건 딱 그 정도까지가 아닐까 싶다. 인공치아가 필요해지고, 관절이 여기저기 아프고, 매일 먹어야 하는 약들이 생기고...그때는 아마 얘기가 달라지겠지.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이제 그런 때로 접어들었나 보다. 아부지가 암 제거 수술을 받으시게 되었는데 그리 걱정할 상황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이제 드디어 시작인가보군.'- 입 밖으로 차마 내진 못하지만 아마 그 방정맞은 생각 때문이리라. 육신이란 젊어질 줄은 모르고 나날이 늙어가기만 할테니, 인간이 감히 바랄 수 있는건 고작해야
지금의 가벼운(!) 탈이 처음이자 마지막 시련이 되어주는 것 정도일테니 말이다. 수술은 가벼울거라 하고 앞으론 검진만 잘 받으시면 된다고, 이제는 건강 돌보며 놀기나 하시라고, 돈 잘 버는 자식들이 넷이나 되는데 혹시나 노후걱정 같은 것도 마시라 온갖 허세를 동원해놓고는 이건 과연 누구를 위한 위로였을까 순간 생각했다. 어쩌면 심란해하는 나 자신에게 하는 오바였을지도. 비록 아직은 멀었다 할 지라도, 부모님이 사라지는 그런 날은,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아직은.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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