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처음 본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첫인상은 재미 없어 보였는데 나도 모르게 집중까지 하면서 보고 있었다. 옛 기억을 하나 둘 떠오르게 한다.
어릴 적 피아노 선생님이 참 괜찮은 분이셨구나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학교 입학 전부터 4학년이 될 때까지 꽤 오래 다녔는데 늘 열정적이고 꼼꼼한 레슨을 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냥 동네 작은 학원이었고 엄마가 왜 그 학원을 택했는지도 기억 나지 않는다. 그땐 그냥, 더이상 엄마한테 등짝 맞아가며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고 ㅎㅎ 학원에 만화책이 그득한 것도 맘에 들었다. 보던 만화를 끝까지 보고 싶어서 내 차례가 왔는데도 다른 애들 먼저 치라고 연거푸 양보한 날도 있다. 메트로놈이나 소리굽쇠를 처음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도 난다. 매주 토요일엔 이론수업이 있었다. 간식으로 나온 과자를 와작와작 먹거나 귤 던지며 장난치는 꼬맹이들의 난장판 속에서 ㅋ 굴하지 않고 청음이나 조옮김 공부를 시켜주셨고, 음악가들에 대한 얘기도 종종 해주셨다. 나중에 돌아보니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싶다. 원장실 책장엔 겁나 어려워 보이는 외국 악보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내가 치고 있던 소나티네나 부르크뮐러 책과는 비교불가한 아우라 같은게 있었다. 해가 가고 실력이 늘수록 그 악보들 중에서 꺼내 주시는게 많아졌고 어린 마음에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몇 년 후 피아노가 지겨워진 그 초딩은 학원을 그만두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피아노가 다시 갖고 싶어지는건 드라마 때문일까. 마지막으로 친 게 언제였나 기억조차 안 날 지경이지만 좌우당간 다음 생일선물은 이걸로 하겠노라고- 떡 줄 사람 생각은 상관도 없이 ㅋㅋ - 디지털 피아노 쇼핑몰 링크부터 보내 놓았다.
정경이의 레슨 장면에서는 바이올린 학원도 그리워졌다. 대학원과 약국 알바, 독일문화원에서 듣던 독어수업 외엔 아무 것도 없던 그 시절의 내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지금도 가끔 그런 꿈을 꾼다- 아주 오랜만에 학원에 간 나는 바이올린 선생님을 재회하고, "저 그 동안 왜 안 온거죠?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요? 레슨비는 그동안 냈나요?" ㅋㅋ 등의 질문을 해대는 꿈. 한국에 가면 쌍문동 우리 학교, 만두집, 학원, 알바하던 약국까지 꼭 한 번 들러봐야지 한 지가 벌써 10년도 더 훌쩍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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