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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MCR과 막내삼촌

by SingerJ 2022. 1. 19.

우리회사에서 만든 제품 중에 어린이용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조절제가 하나 있다. 프로젝트명 'MCR' 이라는 약자로 불리는.. 이 약의 개발을 위해 회사가 가진 최고 난이도의 제약기술을 동원했다는. 빠른 약효가 나타나도록 초반흡수율을 정교하게 조절해야 했고, 그 후엔 딱 적당한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약 기운이 갑자기 떨어져 아이가 흥분상태에 빠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공들임과 고생 끝에 만들어졌다는 약이다. 개발 뿐 아니라 허가과정도 유난히 까다로웠어서.. 허가업무 담당인 내게 언제나 뜨거운 감자 같았던 존재. 그 MCR의 제품관련 데이터를 볼 때마다 나는 막내삼촌을 생각한다.

삼촌이라기 보다는 오빠처럼 친구처럼 지냈던 막내삼촌. 사법고시 공부를 오래~ 오래~ 하다가...매번 2차에서 떨어져 지친 나머지 금년만 해보고 안되면 이제 고만 하련다...하던 그 해에 딱 합격을 했다. 그때만 해도 사법고시 한해 합격자수가 굉장히 적었을 때라서 우리 고향 시골 읍내에는 삼촌의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까지 걸렸었다는 전원일기스러운 뒷얘기도 있다. 늦깎이 합격을 했으니 변호사가 된 것도 늦은 나이였고...결혼도 느지막하게. (서른 일곱이었으니까 나보다 4년은 먼저 결혼했구만 ㅎㅎ 그때 기준으로는 매우 노총각) 삼촌이 보기보다 배우자 될 사람 미모를 매우 따지더만. -ㅅ-


그 보람이 있었던지 예쁜 숙모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 숙모의 미모 덕인지, 아는 사람이 있었던지, 아무튼 잡지에 여러번 임산부 모델로 나오기도 하고 출산 후에는 외국분유 그 뭐지...시밀락인가- 그 모델로 숙모와 아기가 어느날 신문광고에 짠 등장해 놀라기도 했던. 아무튼 그 아이가...ADHD 판정을 받았더랬다.

한 첫돌 까지는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종종 들려오는- 아기가 엄청나게 활동적이어서 보기가 너무너무 힘들다. 부부가 다 몸살 났다- 라는 얘기. 명절 즈음에 그런 얘길 들으면, 우리엄마는 말은 안해도 기분이 상당히 가라앉아 보였다. 남자들은 꼼짝 안 하는 집안 맏며느리에, 작은엄마는 시골에 계시고 이제 겨우 막내동서가 생겨서 일을 좀 같이 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명절마다 몸살이라 못 온다 하니 말이다. 아기 보는게 다 힘들지 엄살은~...하고 나도 알지도 못하면서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ADHD 때문이었던 거다. 엄청나게 활동적인 정도가 아니라, 정말 감당 못할 수준이었던 것. 우리집에 올 때마다 침착녀 우리엄마가 두려워 할 정도로...하도 기상천외한 돌발행동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저질러서 아무리 두 눈을 떼지 않고 있어도 상상 그 이상이라 했다. 엎친데 덮쳐 숙모는 면역질환 루푸스를 앓기 시작했고.. 그 때 쓴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모든 장기의 기능이 망가져 돌아가셨다. 아이가 네살인가 다섯살인가였나. 엄마가 죽었다는 것도 모르는 그 애가 그 날 밤 삼촌에게 그러더란다- 엄마가 꿈에서 형준이 잘 있으라고 빠이빠이 했어...엄마 어야 갔어...라고.. 신기하면서도 슬픈 그 꿈 얘길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삼촌의 삶은 그 후부터 모든게 달라졌다. 홀아비가 되어 ADHD 아들을 키우는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지. 사건 수임 보다는 아이 치료에 더 매달렸다. 유치원에서 아이 감당을 못하니 아빠가 데리고 교육을 하고 외국으로 끊임 없이 여행을 다니고...미술과 시 공부에...그 모습이 눈물겨웠는지 책을 내자는 출판사도 있었다고. 이제 그 애는 대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그러고 보니 오래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한국보다는 캐나다에서 아이가 더 잘 적응하는 것 같다고 보낸 지가 꽤 되었는데. 내 결혼식때 본 삼촌은 깡마른 모습 여전하고 늙었지만 표정은 온화해 보였다. 전문직에다 사별이었기에 사실 나쁘지 않은 재혼기회도 있었는데 아들 때문에 다 고사해버리고. 혼자 많이 고단했을 우리 아재.. 안부라도 한번 더 물어볼 걸, 나는 뭐가 그리 정신이 없었을까.

결혼을 하고 2세를 계획하다 보니, 자식을 낳는다는 게 얼마나 큰 모험인지를 이제서야 느낀다. 혹 손가락이 하나 모자라진 않을지, 대사장애나 희귀병은 아닐지, 발달장애나 정신질환은 없을지, 공부는 잘 할지, 취직은 잘 할지...임신하는 순간부터 자라는 매 순간 부모는 끊임 없는 걱정에서 놓여나지 못하겠지. 나는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도 아닌데, 그릇도 전혀 못 되는데, 혹여 힘든 경우에 해당이 된다면 감당해 낼 자신이 없을 것 같다는 소리나 하는 나에게 남편은 무슬림 같은(!) 답을 한다. 우리에게 아이가 오건 안 오건 그것은 신의 선물이요..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그것 또한 우리의 결정이 아니며, 낳아보니 그 아이가 설사 아프고 남과 다른 아이라 할 지라도...그것 또한 받아들이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물론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사람의 최선이 닿지 않는 영역은 아주 많다. 신께서 정하신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나처럼 모든 종교에 나이롱스러운 사람은 이해하기 너무나 어려운 그 '받아들이기'. 신의 뜻을 그토록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구직때는 어째 나보다 더 초조해하지 않았느냐고 퉁을 꼭 줘야만 하는.. 나란 경박한 사람. 고단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잠깐씩이라도 마음의 평화가 주어지기를- MCR을 볼 때마다 근무시간에 마음은 먼 산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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