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버스를 탈 때
나와 그녀는 늘 일착임.
하여 우리는
제일 맘에 드는 자리에 골라 앉을 수 있음.
그녀는 5열 왼편 창가, 나는 오른편 창가. 늘 같은 곳.
출발 전까지 약 9분을 정차해 있는데
불을 어둑하게 해주는 (쎈쑤 있는) 기사분을 만날 시
제법 꿀잠도 잘 수 있는 시간임.
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으면
그 아늑함은 박스 속 냥이들 부럽지 않음.
어느 날 그 남자가 나타남.
못 보던 새로운 사람임.
그의 승차는 매우 공격적임.
사람들이 다 내릴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비집고 올라타곤 함.
글쎄 그 남자가 그녀의 자리를 차지함.
실망한 듯한 그녀는 그 남자 뒷자리로 갔음.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남자는 계속 그 자리에 앉음.
아마도 남자가 휴가를 가지 않는 이상
그녀가 자리를 되찾을 가능성은 없어 보임.
나는 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표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낼만한 사이는 아님.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그 자리는 한때 내 자리였기도 함.
그러다 그녀가 나타났고
나보다 한발 빨랐던 그녀는
그 자리를 매번 선점했음.
하지만 그녀는 그 남자와 다름.
나더러 자리를 먼저 고르라
상냥한 눈웃음으로 양보할 때도 많았음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양보(?)하고 건너편에 앉았음.
왜냐면 그녀가 마음에 들었음.
(사실 앉아보니 건너편 자리가 더 맘에 들었음)
우리의 평화시대는 그렇게 오래 유지되었음.
그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젠 인정해야 할 것 같음.
이 버스 안에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역시 영원한 건 없지
회사의 골치 아픈 인간들은 전부 박람회에 가서
몹시 평화로운 이번주처럼
내일이면 끝나버릴 이 찰나의 평화처럼
버스 안 평화도 일단락되고 만 것임.
하지만 오늘도 변하지 않은 것
해는 뜨고, 우리는 출근을 하지
버스는 정시에 떠나네
오늘도 오라~~~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이 깊어간다 (0) | 2024.10.14 |
---|---|
현재 스위스 온라인 서점 (0) | 2024.10.13 |
기록해둬야 할 것 같은 날 (0) | 2024.10.10 |
나야, 별사탕 (2) | 2024.10.09 |
가지 마라 일요일아 (0) | 2024.10.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