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셸의 또 하나 상징을 꼽는다면 이 곳- '앙수스 다종 (Anse Source d'Argent)' 일 것이다. 세이셸 내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난 해변으로, 세이셸을 검색했을때 뜨는 사진 중 이 곳이 포함되어 있을 확률은 99.9%. 그러나 나는 여기서 우리나라 속담 하나를 절감하게 된다...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다는. 자전거를 열심히 달려 찾아간 이 곳은, 흙탕물 미역국 -_-;; 이 펼쳐진 좁아터진 해변이었으니...두둥....세상에나 이게 뭥미...사메와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미의 기준이란 역시 철저히 주관적인가 보다. 내게 있어 아름다운 해변이란- 탁 트인 광활함이 있는, 투명 에메랄드 물색의, 뭐 그런건데...이 날의 앙수스 다종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나쁜 날씨 탓이었을 수도 있다. 햇빛 좋은 날이었다면 적어도 물색은 예뻤을 것이나 그렇다 쳐도 시커멓게 무성한 해초들은 워쩔겨.. 인어공주에의 접근을 막고자 마녀가 쳐놓은 결계마냥, 맨발로 들어가긴 심히 꺼려지는 숭하고도 위압적인 비주얼이었다. 저 쥬라기 공원 느낌 화강암 바위는 매력적이긴 했다. 티라노사우루스 한 마리 서 있으면 썩 잘 어울릴 듯한. 그러나 이것 또한 이 해변의 전유물은 아니고 세이셸 곳곳에 비슷한 풍경이 많다.
앙수스 다종에 실망한 우리를 위로해준 다른 해변, 그랑 앙세 (Grand Anse).
흐렸다 맑았다 한 그 날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왔던 물색, 힘차게 치는 파도, 폭신한 백사장. 뭐니뭐도 해도 탁 트인 시원함이 있던 곳. 계획에 없었던 이 해변에서 제법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가지 단점은 그늘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자전거에 이고 지고 다니던 휴대용 텐트가 드디어 쓸모 있는 순간이었다. ㅎㅎ
위험하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파도속에 순간적으로 쏙 들어간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사메는 물에 들어간 지 1분만에 선글라스가 파도를 철썩 맞고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니모, 아니 선글라스 찾아 한참을 스노클링 한 끝에 되찾을 수 있었다. 파도가 계속 밀려오니 언젠가는 선글라스도 되돌아오더라는. ^^
열대지방의 새벽이 특히나 시끄럽다는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라디그는 그 중에서도 역대급인 것 같았다. 새소리, 도마뱀 소리, 하루종일 울어제끼지만 새벽엔 더 열심인 닭들, 기타 온갖 소리가 성량도 겁나 우렁차게 합창을 해대는 통에 도무지 깨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닫아놓은 커튼의 아주 작은 틈새로도 찌를 듯 파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도 늦잠방지에 한 몫을 했다.
마헤섬의 재래시장에서 발견한 셔츠. 전부터 아프리카의 소울이 담긴 컬러풀 셔츠를 갖고 싶다 소망해오던 사메의 눈에서 순간 불꽃이 튀는 걸 나는 보았다. ㅋㅋ
저녁햇살을 받아 마치 타는 노을처럼 보이던 샤쓰. 이거야말로 세이셸의 컬러라고 유레카를 외치는 사메의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은근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원색의 강렬함- 비록 열흘의 짧은 휴가였지만 내가 느낀 세이셸은 그랬다. 뭐랄까, 만년 비교대상인 몰디브 모리셔스에 비해 조금 더 원시원초적인 뭔가가 있었다.
소위 가성비 면에선 셋 중 최하위라 생각하지만 저만의 매력이 있어 우열을 가리기는 힘든- 나 또한 이런 뻔한 소감을 말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거나 사실인 것 같다. 두루두루 무난한 휴양지를 원한다면 몰디브가, 가성비를 특히 중시한다면 모리셔스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세이셸은, 굳이 거기여야만 하는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이는데, 안 와봤더라면 좀 아쉬웠을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붉은노을 샤쓰는 그의 가방으로 개켜져 들어가고 라디그에서의 마지막 노을도 그렇게 함께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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