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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봄나물 대신

by SingerJ 2022. 1. 16.

감기 땜에 회사 안 갔다. 상태 봐서 내일도 아마 쉴 거 같다고 보스한테 연락을 한 뒤 진짜로 쉬었냐 하면 그건 아니고 (회사 안 간다 하면 씻은듯 급 낫는 이 조화;;) 장을 보러 갔다. 음...좀 둘러보다 보니 도로 힘 빠지는 기분.. 맛있는게 없잖아 맛있는게.. 힝.. 봄에는 좀 상큼하게 나물도 무쳐 먹고 딸기도 새콤달콤 그래야 봄기분도 나고 그런거 아님?


스위스 식재료는 뭐랄까...있을 건 있게 구색은 갖춰져 있는데 무향무취인 느낌. 영국음식 맛 없다, 독일음식 투박하다 하면서 왜 스위스 음식에는 별 말들이 없는지 모르겠다니께.. 그마나 바젤에 살아서 다행인 건, 국경이 가까우니 다리 하나 건너면 이웃 독일에 가서 더 싸고 맛있는 고기를 사 올 수 있고 스위스의 냉동생선과는 천지차이인 신선한 생선과 해산물을 프랑스에서 가져올 수 있긴 하다. 그렇지만 오늘 내게 국경까지 넘나들며 먹을거리를 사다 나를 열정이 있을 리 만무하므로.. 봄나물이다~...상상하며 아스파라거스를 사고, 딸기다~...생각하고 제철도 아닌 아티촉을 샀다.

씽크대 위에 놓인 이 채소들을 보고 있자니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이걸 어떻게 손질하는지 어떻게 해먹어야 하는지 몰랐던 독일생활 초기의 기억도 아련하고 쟤는 무슨 꽃 같은 걸 시커멓게 삶아서 저리 쪽쪽 빨아먹나 ㅋ 학교동료를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도, 쉽게 살 빼보겠다고 '2주 다이어트 밥상' 인가 하는 식단책을 샀는데 첫장부터 돌나물, 부추, 파래 등장에 포기해버렸던 일도. 아, 이젠 다이어트도 한식으로 하기엔 어렵겠구나 하고 그때 실감했더랬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지만 이제 저런 한국 식재료들은 더이상 내게 '일상' 속의 재료가 아니구나.. 하고. 언제부턴가 우리집 찬장에서는 간장 참기름보다 올리브오일 떨어지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비가 안개처럼 뿌리고 있는 봄날. 봄동 겉절이와 된장국 대신 아스파라거스 넣은 오믈렛 한조각을 먹으며, 예전에 즐겨보던 여행 다큐의 첫장면을 문득 떠올렸다. 에스키모들은 순록을 타고, 아프리카 사람들은 훌러덩 벗은채 열대과일을 먹고, 우산을 들고 거리를 걷는 유럽인들의 모습.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지만, 아마 솔잎이 없는 곳에서 살게 된다면 또 뭐든 다른 먹을만한 걸 찾아냈을거야.. 이 글로벌 시대에도 지리와 환경은 아직 삶의 꽤 큰 부분을 지배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은 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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