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흘 비가 내리고 나더니 여기저기에 꽃봉오리가 부쩍 늘었다.
이 곳의 봄이 무르익어가는 정도는 딸기를 보면 알 수 있곤 했다. 인공적인 빨간색에서 점차 분홍빛이 섞여 돌기 시작하고, 그제사 제법 딸기향도 짙어지고, 이제 겨우 막 맛있어졌나 싶으면 벌써 끝물이라 잼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딸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봄이 무르익었다는 증거였다.
어째 이번 봄엔 그런 딸기가 끝내 나오질 않는다. 대신에 진열대를 메우기 시작하는 앵두. 이번 봄은 제대로 온 적도 없이 어느새 가려나보다. 순간순간을 멍하니 스쳐보내는 어리석음은 이제 되풀이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잘 하고 있나...? 벌써 5월 중순.
이십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 박우현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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