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부모라는 죄인

by SingerJ 2022. 8. 24.

우리 회사 임원 중 한 명인 안드레아. 그녀의 아들 P가 생산팀에 입사했다. 엄마 빽으로 들어온 낙하산인 건데, 어차피 늘 사람이 필요한 부서다 보니 별로 낙하산 같지 않은 낙하산인 셈이다. 안드레아와 친한 카트린의 말에 따르면 P는 학창시절부터 아무 것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진학도 싫다, 기술 배우기도 싫다, 그래서 고교 졸업 후 지금껏 7년을 히키코모리로 살았다고. 

생산팀에서 뭔가 전해 받아야 할 게 있었다. 독일과 스위스에 떨어져 있다 보니 누군가 메신저가 필요했는데, P를 통해 안드레아에게 전해줄테니 그녀에게서 받으라고 생산팀장이 제안했다. 물건을 전해주러 들른 안드레아의 표정이 참말로 환했다. 그녀의 그런 기쁘고 기꺼운 표정은 처음 본다. P는 잘 하고 있느냐 묻자 뺨까지 상기되어서는 신나게 답한다. 이런 부탁 또 있으면 얼마든지 하라는 말도 함께.

사정을 알고 봐서 그런가, 안드레아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구석에 7년을 처박혀 아무 의욕도 없던 아들이 이제 직장엘 다니고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 물건 하나 전해주는 일에 불과하지만 나름 그를 필요로 하는 일도 생겼다. 드디어 사람 구실 하게 된 자식을 지켜보는- 기쁨과 조마조마함이 뒤섞였을, 그리고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도 싶을 그 마음을.

내 회사생활을 짜증나게 만드는 두 사람에 대해 불평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려나- 나대는 사람과 멍청한 사람이 있다고. 사실 그 '나대는'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인데 -_-;; 오늘 그 찡한 표정을 보고 나니 흉 봤던게 좀 미안해졌다. 부모란 뭘까. 국적을 불문하고 자식 일엔 그저 죄인인 것 같다. 둘도 없는 약자인 것 같다. 

안드레아의 아픈 손가락도, 그리고 세상의 다른 모든 자식 새꾸들도 무탈하게 성장해 혼자 힘으로 둥지 밖을 훨훨 날게 되길 바란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기 경계령  (2) 2022.09.03
뻐꾸기 시계  (1) 2022.08.28
맘에 드는 광고음악  (0) 2022.08.14
공감 받지 못한 취향  (2) 2022.08.13
더덕구이 뿐이랴  (0) 2022.08.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