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금요일 밤. 창문을 열었다가 훅 들어오는 젖은 공기 내음에 홀려 한참을 닫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고등학교 시절, 야자가 끝나면 다른 친구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려 한산해진 교정을 마지막에 걸어나오곤 했다. 데리러 와 있는 봉고차가 있는 곳까지 짧디 짧은 나만의 밤산책. 매일의 그 순간이 천금 같았지만 비 내린 후와 초여름밤엔 더 특별했다. 비에 젖은 흙냄새, 그리고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아카시아의 달콤한 향. 아... 이런 날에는 날숨은 건너뛰고 들숨만 쉴 수 있었으면, 이라고 소망했던.
옛날 일기를 들춰보니 이런 게 있다.
2004년 3월 4일, 날씨: 비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비가 내리지 않아도
음악이 흐르지 않아도
난 당신을 생각해요.
(앜... 말로만 듣던 싸이갬성이 내 일기장에)
그 옛날 고딩때도, 2004년에도, 20년이 더 흐른 2024년에도 비가 오면 이 노래를 듣고 있다니. 곡 만든 분과 가수분은 뿌듯해도 되겠습니다. 집 나갔던 감성이 좀비처럼 살아 돌아와 펄떡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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