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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

티라미수의 시험

by 달밤의 J 2025. 11. 9.

티라미수를 만들어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 사람은 참 각양각색이고 씰데 없는 강박 또한 가지가지라는 거다. 티라미수 앞에 설 때마다 왠지 시험대에 오른 착각에 빠지곤 한다.

넌 나를 얼마만큼 무심하게 푹 퍼낼 수 있을까!
자, 한번 해봐~!

시루떡 아님

디저트들은 대개 예쁘고 정교하지만 티라미수는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잘 정돈된 모습보다 시골 할배가 인심 좋게 대충 푹 퍼준 듯한 모양새 쪽이 더 맛있어 보이기도. 예쁘지 않아도 돼.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편하게 퍼서 맛있게만 먹으면 돼- 라고, 틀에 박힌 인간에게 건네는 위로인 것 같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왜 나는 괜히 긴장하는가.. 이게 뭐라고 심호흡까지 하면서 푸곤 하는데, 역시나 100% 릴랙스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실소하게 된다. 퍼낸 단면이 너무 지저분해 보이진 않을까 나도 모르게 슬슬 정돈하고 있는.

어느 겨울 로마의 카페에서 먹었던 티라미수를 떠올린다. 추위에 시퍼렇게 얼어 들어선 우리에게 기똥차게 맛있는 커피와 한주걱 푸욱 떠낸 티라미수를 내오던. 거대한 유리용기 안에서 출~렁 하던 그 티라미수. 당신은 티라미수를 얼만큼 무심하게 풀 수 있습니까- 내게 있어 이 '시험' 은, 앞으로의 내 삶도 그렇게 쿨하게 시크하게 살 수 있을지 없을지를 시험당하기라도 하듯 진지하고도 엄숙해지기까지 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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