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매이션 '너의 이름은' 을 보고 잔 탓인지 뜬금 없이 노아의 방주(?)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었다. 대재앙이 닥쳐오기 전에 어서 탈출해야 한다며 험한 산을 끝없이 오르는 꿈을 꾸고는, 잔 듯 만 듯 아침부터 매우 피곤했다. 휴가동안 쌓인 일이 아직도 봇물 터진 듯 밀려오고 있어서 매우 스트레스 받는 한 주이기도 했고 하여간 이래저래 기분도 컨디션도 별로던 차에 빨래가 제대로 안 되어있는 걸 본 토요일 아침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어젯밤 친구 만나러 가기 전 사메가 한 호언장담이 있었다. 가는 길에 빨래 돌려놓고 돌아오는 길에 챙길거라고. 약속이 있건 아프건 자기가 맡은 일은 참 제대로 하지 않냐며 그깟 걸로 생색까지 내더니만...아침에 일어나보니 보송한 빨래는 커녕 세탁이 끝난 반은 젖은 채로 세탁기안에 갇혀 밤새도록 건조 대기였던 모양이고 나머지 반은 아직 빨지도 않은 상태.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축구 시청에 몰두하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묻는다- "아 참, 빨래는?" 내가 마저 끝냈다고 했더니 하는 말- 말하지 그랬냔다. 하라고 말을 하지 왜 가만 있었냐고.
오늘따라 왜 그렇게 화가 불같이 나던지 나도 모르겠다. "왜 내가 너에게 집안일을 지시해야 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말해봐." 회사에서는 자기 일 깜박했다고 동료나 상사 누구한테 가서 '왜 나한테 안 말했어, 안 시켰어' 라고 묻진 않을거 아냐. 그런데 집안일에서는 그런다는 건 왜 그러겠나? 뻔하지.. '내 일' 이라는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지.
과제를 정하고 스케줄 짜고 누군가에게 배당하고 진행상황을 확인하고...그 일을 직장에서 하면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고 돈 많이 받는다. 그 일을 집에서 무급으로 하는 책임자는 아내라고, 왜 그렇게 느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함 들어나 보자고. 자기는 별 뜻 없이 한 말에 내가 정색하고 따지니 자기도 못마땅한지 신경질이다. 좋게 말하면 되지 왜 짜증이냔다. 이게 다 그 썩어빠진 집안일을 '도와준다' 라는 마인드에서 비롯되는 거 아니냐고.
우리엄마 말로는 사메 정도면 매우 대견하고 잘 구스르면 도맡아서도 할 사람이라며 사위 칭찬이신데 이것 또한 너무나 짜증나는 것. 왜, 남자는 자기 사는 집안일 하는게 '대견' 씩이나 하지. 왜 여자는 조근조근 남편을 우쭈쭈하며 시키는 요령이 있어야 '현명' 한거지. 남편이 집안일을 90%를 하건 100%를 하건, 도와준다는 그놈의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증말 너무나 아니꼬운 것. 억센 아줌마처럼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 하루 종일 화가 나 있다가 머리를 식히고자 저녁무렵 강변을 씩씩거리며 걸었다.
한 시간 반 가량을 걷는 동안 평소엔 눈에 안 띄던 많은 것들이 보였다. 저 집 화단에 언제 저렇게 수선화가 많이 피었던가, 어느 꼬마를 무척 애태웠을 나무에 걸려버린 연, 영화 '델마와 루이스' 를 떠올리게 하는 두 여인, 캔맥주를 마시며 바람을 음미하는 분위기 있는 총각, 새로 노란칠을 한 강변 레스토랑의 테이블들- 마치 새로운 발견 같던 시간. 씩씩거리며 시작했던 걷기가 나중엔 그 자체로 의외로 즐거워 얼마 동안인지 모르도록 한참을 더 걸었다.
다이어트도 할 겸 매일 걸을까, 다음번엔 카메라도 들고 와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ㅅㅂㄴ (남편을 지칭하는 읽기 나름 약자라던데...기분 좋을땐 '서방님', 나쁠땐... -_-ㅋㅋ 오늘 내가 뭐라고 읽고 싶은지는 너무나 자명하고요.) 아무튼 ㅅㅂㄴ 덕분에 좋은 운동 아이디어를 얻은 셈이니 좀 덜 미워해야 할라나. 도대체 저 남자가 뭐가 좋다고 나는 결혼까지 저질렀을까 그래. 이 자문을 연애시절부터 한 천번은 족히 던졌을텐데도 아직 답을 모르겠다. 남편아 당신도 아마 똑같은 자문을 하겠지. 그는 답을 아는지 함 물어보고 싶네... ㅅㅂㄴ 당신은 아시오, 왜 나랑 결혼했는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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