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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마지막 헌 도마를 떠나보내며

by SingerJ 2022. 1. 26.

금년 크리스마스 장이 열리면 잊지 말고 올리브나무 도마를 사야지, 하던 참이었다. 빵보드 치즈보드로 쓰는 작은도마는 이미 있지만, 좀 큼지막한 걸로 하나 더 사려니 적당한 놈 찾기가 의외로 쉽지 않았다. 곧게 자라지 않는 올리브나무의 특성상 단면이 워낙 들쭉날쭉해, 모양이 괜찮다 싶으면 길이가 짧고, 길이가 적당하면 폭이 또 좁거나. 올리브나무 수제품이 쏟아져 나오곤 하는 크리스마스 장에서 꼭 하나 건져오는게 금년 나의 '작은' 목표 중 마지막 항목이었다.

 

오늘 요놈을 들였으니 그 마지막 목표까지 드디어 이루어졌다.

1월 1일에 두 개의 목록을 만들었더랬다. 큰 목표, 작은 목표. 자기계발과 관련된 '중대한' 건 큰 목표- 이를테면 뱃살 빼기 (매우 중대 -_-;;), 고급 독일어 독해집 끝까지 풀기, 연수 프로그램 3회 이상 수료 등.

 

그에 비해 작은 목표는 그야말로 하찮은 것들이었다. 공원에 꽃 보러 가기, 동물원 야간개장 가기, 여름엔 하이킹, 10월 호박축제 구경 하는 식으로. 계절별 또 월별로 아름다운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소망이었다. 또한, 큰 목표 달성률이 시원찮을 경우 이거라도 다 해낸다는 위안용 백업이기도 했다.

남편의 헌 난닝구를 하나 훔쳐내, 드디어 완성된 도마 컬렉션에 기름칠을 하는 밤.

날씨가 부쩍 추워져 집 쿠션들은 털북숭이로 무장했고, 이불커버도 루돌프스러운 겨울버전으로 바뀐지 오래다.

어느새 또 이렇게 한 해가 끝을 향해 가는지.. 시간아 너는 어쩌면 그렇게 빨리 달리니, 라고 물어보고 싶네. 이럴 줄 알았으면 작은 목표를 더 많이 세울 걸 그랬나. 그러면 지나간 일 분 일 초를 더 많이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흠집투성이 마지막 헌 대나무 도마를 재활용 봉지 속으로 떠나보내며 잠시 센치했다. 잘 가, 그동안 참 수고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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