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버거킹에 들렀다. 오랜만에 와퍼 좀 먹어보자! 하며 룰루랄라 들어서다가 멈칫 했다. 웬 못 보던 기계들이 막 서 있지 않겠나.
뭐, 뭐야 나 왜 당황하냐... 그냥 주문기계일 뿐이잖아! 여기저기 옛날옛적부터 있어온 건데 왜 버거킹엔 있으면 안 되는데. 나 우리 읍내 무시하냐. 물론 당황은 찰나였을 뿐, 이내 난 기계를 한 백 번은 써 본 사람처럼 주문을 하고 와퍼를 픽업해 왔지만 말이다.. 그 몇 초간 느낀 복잡한 기분은 상당히 강렬했다.
이까이꺼 뭐라고 왜 흠칫 했지 하는 존심 상함, 이렇게 서서히 '옛날사람' 이 되어가는 건가 하는 大비약까지. 옛날사람이 되어가는건 당연한거다. 슬픈 일이 아니다. 그리고 누구나 언젠가는 옛날사람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3초 만큼은 난 진심으로 슬펐던 것이다.
나같은 나름 문명세대도 순간 이럴진대, 이런 거라곤 진짜 아~무 것도 없던 시절을 살다 처음 맞닥뜨린 진짜 '어르신' 들은 어땠을까.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직접 경험하는 것인가. 그 몇 초간 나는 어르신들 기분을 폭풍공감했다. 직접 겪어봐야만 알 수 있게 되는 거라면, 죽을 때까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내겐 아주 많이 있다. 아직은 새롭고 편리한 거에 그저 열광하지만 그 새로움/편리함이 감당하기 벅찬 낯설음과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날이 내게도 올까.
10년, 20년 후 나는 얼마나 더 옛날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꼭 일기를 써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 2022년 3월 2일, 버거킹에서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래도 매료될텐가 (2) | 2022.03.06 |
---|---|
애먼 사람 잡으면 못 써 (0) | 2022.03.04 |
비로소 이해되는 농담 (0) | 2022.03.02 |
살까기는 계속된다 (0) | 2022.02.25 |
우리동네 피자집 (0) | 2022.0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