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고 풋풋한 연두. 내가 생각하는 진짜 '봄날' 이란 그렇게 좀 덜 익은 모습인데, 그런 풋풋한 봄을 만끽하기엔 너무 늦어버렸음을 오랜만의 산책길에서 깨달았다. 연두는 어느덧 제법 초록으로 무르익은 지 오래. 그늘에 있어선지 동무들보다 좀 늦되어 보이는 연둣잎들을 사진에 담으며 생각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의 아기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이런 류의 기분이지 않을까 하고.
극 내성적인 인간에게 봄이란, 새학기 증후군과 맞물려 늘 두렵고 떨리는 계절이었다. 한국을 떠나오던 2001년의 봄은 특히 그랬다. 떠날 날을 앞두고 접하는 모든 것들이 발바닥에서 머리 끝까지 감정을 울렸고, 당시 들었던 노래와 상영중이던 영화는 지금도 생생한 감각으로 남아있다.
'봄날은 간다' 가 나왔던 그 해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영애도 유지태도, 그리고 나도, 한층 나이를 먹었다.
스무 해가 넘게 봄날이 가고 또 오는 동안, 그때의 내가 바라던 것들을 지금의 나는 이루었을까. 아니, 질문을 정확하게 다시 해보자면, 그때는 알지 못했던 '잘 사는 삶' 이란 뭘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는가. 20여년째 같은 물음을 던지며 또 한 번의 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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