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발견 18일째.

품기 시작한 지 17~19일쯤이면 부화한다고 하니, 우리집 둘기네도 얼추 때가 되었다. 요 며칠은 내다보기 전에 심호흡부터 한다.
흰둥이의 자세는 매일 너무나 한결같다. 지난 주말에 찍은 거였나. 오늘도 복사+붙여넣기 한 것처럼 똑같다. 가끔 알 하나가 삐져나와 있기도 하지만 뭐 어련히 알아서 잘 품겠지.

인터넷에서 읽은 비둘기 산바라지 후기들의 결론은 99%가 '후회막심'으로 수렴하는 듯하다. 다들 처음엔 측은지심에 쫓아내지 못했다가, 나중엔 똥&깃털 폭탄과 알 까기 무한루프😂에 나가떨어진 것 같던데. 나 역시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 우려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미 시작된 걸.
비둘기 부부가 드나드는 왼쪽 코너를 제외한 난간 전체에 버드 스파이크를 설치했는데, 그 덕에 다른 비둘기들은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둘기 부부는 예상보다 깔끔한 편으로, 똥도 거의 안 보이고 깃털 또한 첫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구석에서 알만 품고 있어서 베란다를 어지럽힐 새가 없다. 하지만 진짜 새로운 국면은 새끼들이 태어난 이후부터일 테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하루만에 잔가지가 부쩍 늘어난 오늘의 둥지.

아직은 부화 전이다. 아니, 부화하긴 할지 사실 모른다. 모든 알이 성공적으로 부화하는 건 아니니까. 오늘도 둘기 부부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알들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두 녀석 모두 무사히 깨어나 빛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철학적 의미 같은 걸 굳이 갖다 붙이지 않아도, 실제로 옆에서 지켜보기에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일이 결코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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