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놓치도록 늦잠을 잔 연유가 무엇이냐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옛날에 썼던 여행기를 밤 늦도록 다시 읽어보다가 그랬다. 비엔나는 십수 년, 그리고 슬로베니아는 이제 딱 10년이 흘렀다, 처음 가 본 이후로. 다시 보는 블레드 호수는 여전하나 그 주변은 많이 변해있었다. 십년 전엔 없었던 것 같은 호텔들이며 아스팔트길, 상점들. 하긴, 강산이 변할만도 한 시간이 흘렀으니.
블레드의 우리 숙소는 마치 귀족의 별장 같았다. 여행자들이 유럽에서 흔히 기대하는 분위기를 잘 파악해 그대로 재현해놓은 느낌이었달까.
집안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베란다에서 보이는 풍경도 맘에 들었더랬다. 호수의 반짝임이 지척에서 내려다 보이고, 꼬맹이의 나무타기를 도와주는 아저씨의 모습 하며 (혼 내지 않고 도와주다니 몹시 신선했음. ㅎㅎ).
밤이 되면 타들어가는 번개탄 (연탄이랬던가? 친구 지니의 표현 ㅎㅎ) 같은 조명이 켜지는.
성에서 열리고 있던 중세모습 재현 이벤트.
첫 방문때는 학회의 반나절을 땡땡이쳤다는 죄책감 + 시간이 별로 없다는 급한 마음으로 둘러보았었는데 지금은 한결 여유롭게 이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서 다시 온 보람이 있고도 남음이었다.
그리고 (와본 적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보힌호수. 여행 전날 읽어본 옛날후기에 의하면 여기도 와봤었다는 새로운 ㅋ 발견. 내가 가진 블레드의 기억이란건 사실 블레드+ 보힌이 짬뽕된 기억이었던갑다.
개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개를 데려올 지 쓸 데 없는 고민을 가끔 해보곤 한다. 다시 한 번 요크셔테리어? 아니면 코카스파니엘, 콜리, 아프간하운드, 골든리트리버, 시골스타일 믹스견? 다들 너무 귀엽잖아 흑흑..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키울 여건이 안 된다는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
어딘가에 다시 와본다는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인 듯 처음이 아닌 것 같은, 새로우면서도 어딘가 익숙하게 다가오는 정경 하나하나. 첫 방문때는 다 그리지 못했던 밑그림을 두번째 방문에서 비로소 완성하고 색까지 입힐 기회를 얻는 것 같은.
함께 해서 좋았고, 다시 와서 좋았고, 새롭게 가본 곳이 있어 또 좋았던,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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