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기차를 타고 취리히 한국수퍼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우체국에 들러 소포를 찾았다. 된장찌개와 어묵볶음을 한 다음 내일 먹을 생선 밑간을 하고 도시락 만드는 데 쓸 닭고기를 재워두었다. 매일 저녁밥 대신으로 먹는 걸쭉한 수프도 큰 냄비 끓이고, 내일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 먹으라고 석류를 두 개 까 놓았다.
1년여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복귀하는 한 동료를 위해 몇 명이서 간식을 만들어 가기로 했는데 나는 파운드 케잌을 맡았다.
피칸을 넉넉하게 사뒀건만 글쎄 우리집 인간 햄스터가 반이나 홀랑 먹어버리는 바람에 -_-; 양이 간당간당해 보인다.
결국 회사 가져갈 거에만 좀 제대로 넣고 집에서 먹을 케잌에는 피칸이 장식용으로나 몇 개 들어가는 걸로.. 크흑 용서하지 않겠다 햄스터.
남편도 회사에 가져가게 하나 구워줄까 물어보니 설탕을 눈처럼 듬뿍 뿌려달란다 (이러면서 자긴 단 거 안 좋아한다고 함). 쪼글쪼글해져가는 사과를 몽땅 썰어넣고 소원대로 설탕을 눈같이 뿌려준다. 오래된 사과인 거 티 안 날거야 그치..? -.-;
침대 매트리스 커버랑 이불커버를 갈고 내 셔츠와 사메 바지를 다린 다음, 배가 고파 점심을 먹으려고 보니 벌써 오후 세 시가 넘었다. 읍내 크리스마스 마켓이 문을 열어서 구경 가려고 했었는데 피곤해서 그냥 낮잠이나 자고프다. 뭐 하냐고 전화가 왔길래 순간 대답했다... "어 그냥 있어. 아무 것도 안 해."
끊고 나서 그제서야 이상한거다. 왜 아무 것도 안 한다고 했지? 식구 많은 집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이것도 다 일이라면 일인데. 자질구레한 집안일 같은건 '아무 일' 도 아니라고 나 스스로 내심 하찮게 여겼던 걸까. 향 좋다는 새 바디스크럽으로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새 커버 보송한 이불을 덮고 한숨 푹 자야겠다. 아무 것도 안한 거 아니야, 라고...스스로에게 한마디도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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