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베란다에 비둘기 한 쌍이 산다. 흰둥이와 회색 비둘기 커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발견한지는 두어 달 됐다. 그 쪽 베란다는 쓰질 않아서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나날이 늘어나는 자기 축구화 컬렉션 둘 곳을 찾던 사메가 비둘기들을 발견했다. 그 후로 지켜보니 매일 오는 것 같다. 해 지면 들어와 자고, 출근할때 보면 없고, 주말엔 마치 주말인 걸 알고 늦잠이라도 자는 듯 제법 늦은 아침까지 베란다에 머물기도 한다. 덜 추운 날엔 저렇게 한마리씩 따로 자고 추워지면 붙어앉아 밤을 난다.
그제와 어제는 웬 일인지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사고라도 당했나? 아지트를 옮겼나? 궁금하고 걱정까지 되다가 아까 전 돌아와 있는 비둘기들을 보고 버럭 할 뻔 했다. 야 너희들 말도 없이 외박하면 어떡하냐! -_-;; 세놓은 적 없고 세든 적 없는 다소 이상한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 예뻐하는 마음은 결코, 전혀, 1도 없지만, 어차피 쓰지도 않는 베란다에서 좀 쉬다 가는 것까지 굳이 내쫓을 맘은 없어 그냥 두고 있다. 세상은 모두의 세상인데, 인간들은 왜 자신들을 위해서만 점점 많은 땅을 차지하고 다른 생물의 출입을 막는지가 예전부터 의문이긴 했다. 집이나 카페는 그렇다 쳐도, 산이나 바다같은 공공의 자연에서 여긴 해수욕장이니 개는 오지 마라, 캠핑장이니 반달곰도 오지 말라 해버리면 대체 어쩌라는건지. 나는 그런 이들과 달리 사랑 넘치는 인간이라 너희들에게 베란다를 기꺼이 내주노라! 라는 얘긴 물론 아니고...그저 이 말을 하고 싶다- 갈 때가 되거든 가라고. 이 겨울을 무사히 나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그때까진 나의 보금자리 한구석이 저들에게도 안식처가 되어주기를. (...근데 나중엔 꼭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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