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계획대로라면 우유니 소금사막에 가 있었을 크리스마스인디. 인생이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재미난(...) 것. Grächen (그레헨)이라고, 체르마트 근처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성탄절을 보냈다.
휴가에 여행도 못 가고 만날 집에서 밥 하는 내가 불쌍했던지 (아님 자기가 눈치 보였나 ㅋㅋ) 사메가 즉흥적으로 추진한 바람쐬기였다.
사메는 요즘 방사선 치료중인데 거의 매일 병원에 가야 해서 2박 넘게는 집을 떠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이 마실도 단 2박이었다.
발코니에서 마테호른이 보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구경거리는 없는 곳.
눈 밟으며 산책이나 하고
곤돌라로 좀 더 높이 올라가면 스키 눈썰매 등을 할 수 있다.
사메가 눈썰매 두 번 탈 동안 나는 타는 시늉만 좀 하다가 ㅎ 카푸치노 한 잔 마시며 멍 때리기.
맑고, 차갑고. 눈놀이 하기 좋은 날씨였다.
알프스 눈이 매년 점점 더 녹고 있다잖은가. 이게 막 체감이 되면서 두려운 게, 높이 올라갔는데도 예전만큼 춥지가 않은 것. 아래 위로 몇 겹 껴입고 간 게 너무 더울 지경.
음식이 그저 그래서 안 찍으니 사메 왈, 먹을 거 사진 없는 사진은 여행사진이 아니라며 (금시초문이지만 그렇다고 또 찍는 나).
아직도 디저트는 그림의 떡일 뿐. 힘들게 뺀 살 다시 찔까봐 두려워서 못 먹겠다.
스파에서 사우나, 족욕 등 하다가
벽난로 앞에서 불멍하다가...그렇게 이틀이 후딱 갔다.
조용한 산간지방 마을 중에서도 이 곳은 너무너무 조용해 신기할 정도였다.
밤이면 무서우리만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소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무슨...'마지막 관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의 장난을 타고난 주인공이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넘어야 하는 n개의 관문 중 마지막이랄까. 왕년에 만화책 열띠미 보던 경험으로 볼 때, 보통 첫번째 관문에선 괴물이 나오고, 다음 관문에선 더 숭악한 괴물들이 더 많이 나오고, 마지막에 꼭 이런 류의 함정이 나오지 않던가. 평화로운, 그러나 묘한 미스테리한 기운이 감도는- 강인한 자아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우리의 주인공 레 샤르휘나만이! (이게 아닌가;;) 통과할 수 있는 뭐 그런 관문.
그러다 아침이 오면 높은 곳에서부터 차차 연분홍 동이 터오고
어느 집 마당 나무 장식이 참 화려하더라 (그런데 밤에 갑자기 뙇 나타나니 무섭더라는).
빛 받으며 까무룩 잠든 허스키가 억수로 평화로워 보였다. 아직 남은 며칠의 소듕한 휴가를 나도 이렇게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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