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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Madagascar 4] 이보다 더할 순 없다

by SingerJ 2025. 8. 22.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에너지 소모가 상당한 여행이었다. 우선, 도시 간 이동수단이 이보다 더 비효율적일 수 없었다. 비행기 타면 해결되는 거 아니야? 라는 내 생각은 너무나 안이했던 것. 이 나라에서는 항공편조차 믿을 게 못 되었다 (지연/결항이 밥 먹듯 흔하다고). 아니나 다를까, 출발도 하기 전에 네 번이나 일정이 바뀌지 않겠는가. 여간 조마조마한 게 아니었다.

'이거 이러다 필시 줄줄이 꼬이지!' 싶고, 문득 덕선이가 떠올랐다. 완벽히 준비된 마다가스카르 피켓 담당자였지만, 팀 불참으로 인해 올림픽 참여의 꿈이 무산될 뻔했던. 천만다행으로 결항은 없었지만 두 시간 지연으로 연결 비행편을 놓칠 뻔한 위기가 한 번 있었다.

소싯적부터 늘 '가보고 싶은 곳' 목록에서 빠져본 적이 없지만 매번 망설이게 되던 이유는 이것이었던 것 같다- 너무나 열악한 인프라. 한 10년 기다리면 발전하지 않을까 했지만,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발전을 한 게 이 정도인건지 아니면 아예 발전이 없었던 건지 알 수가 없는. 아무튼 여러 모로 녹록지 않은 여행지였다.  

물, 전기, 도로가 가장 시급해 보였는데, 자력으로는 힘들어 보이고 외국자본의 대대적 투자가 있어야 빠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양호한 주택가. 사방 벽이 멀쩡하다는 것 만으로도 훌륭해 보인다. '저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움막집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가장 발전이 안 된 나라 중 하나이자 최빈국 중 한 곳.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이 나라만의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지만큼은 상태가 양호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마다가스카르는 그럴 여력조차 없어 보였다.    

어디서나 식전 스낵으로 나오던 땅콩. 맛있어서 몇 봉지 사왔는데 그 맛이 아니네. 

바닐라가 유명하다고 한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서 나던 짙은 찐 바닐라 풍미.  

아프리카 정상들의 모임이 열리는 기간이라고 했다. 각국 정상들의 사진과 국기가 죽 걸려있음. 

바오밥 열매
마다가스카르 콜라 '월드 콜라'. 맛은 펩시와 매우 비슷

거리를 잠시만 둘러보아도, 천근같은 가난의 무게가 느껴지는 여러 광경을 맞닥뜨릴 수 있었다. 특히 카메라를 통해 보는 기분은 남다른 것이었다. 그냥 눈으로 볼 때보다 더 자세히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괜히 더 감정을 실어서 보게 되고. 여행자는 여행자일 뿐, 값싼 동정이나 오지랖은 접어두고 그저 내가 받은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깔끔하게 떠나주는 것이 여행자의 본분이라 생각하지만,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어쩐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순간순간 잔잔하게, 때로는 격하게 출렁이는 감정의 동요 같은 것을 자주 느꼈다.  

구정물에 가까운 도랑에서 빨래를 하고,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말리는 풍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쨍한 햇빛 아래 알록달록 옷가지들이 펼쳐져 있는 광경은 여행자의 눈에 색다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예술적으로조차 보이기도 했는데, 왠지 선뜻 셔터를 누를 수는 없었다. 바오밥 나무 거리에서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소 달구지를 타고 일터로 가는 지역주민들의 모습도 한없이 이국적으로 보였지만 왠지 그 모습을 찍을 수는 없었다.  

한국인이 세웠다는 도서관. '좋은 일 한 한국사람이 있네' 라고 생각하다가, 사진작가라는 말을 듣고 왠지 알 것 같았다. 그렇구나...이런 기분을 느꼈던 건 역시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 그 사진작가는 아마도 카메라를 통해 이곳을 보는 동안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그 마음을 실천에 옮긴 것이 아닐까.  

내 비록 공감능력 한참 부족한 관광객일 뿐일지라도, 함부로 셔터를 눌러대지 않는 것이 이 곳에 대해 할 수 있는 내 방식의 존중인 것만 같았다. 평소 같으면 놓치기 아까워할 이국적인 풍경들을 그저 눈에만 담는 걸로 만족하였다.  

붉은 흙먼지가 안개처럼 깔린 바오밥 나무길을, 아프리카 소들이 끄는 달구지에 색색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열대과일과 갓 잡은 닭들을 싣고 지나가는 풍경은 이보다 더 epic 할 순 없었다. 그 와중에도 그런 속물 관광객 같은 생각을 숨기지 못하는 나를 보며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마음이 일렁이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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