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왔던 나의 소듕한 김치. 아깝지만 오늘은 먹어야겠다. 너무 오래 숨기다간 꼬리를 밟힐 것 같아서. ㅎㅎ 사메가 김치맛을 알게 된 후로는 너무 빨리 동 나는 듯 해서 -_-; 위기감을 느낀 나는 치사하게도 숨기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진짜로 숨겼다기보단 눈에 좀 덜 띄는 ㅋ 위치로 옮겼달까. 그 후로는 김치가 줄어들질 않는걸 보니 효과가 있는갑다 했다.
남편 먹는게 그리 아깝다는게 아니라 나도 나름 변명거리가 있다. 사메에게 김치란 맘에 드는 여러 피클 중 하나일 뿐, 꼭 김치여야만 할 이유는 없다. 반면 내게 있어 김치는 All or Nothing. 없으면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김치가 어울릴 자리에 다른 걸로 대체할 수는 없는 존재인 것이다.
남은 김치를 제일 후회 없이 먹어치울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 만두를 빚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배고팠던 과거 이야기를 뜬금 없이 떠올리면서 (라면을 끓여 그냥 먹으면 모자라니까 퉁퉁 불게 해서 엄청 많아보이면 먹었다던), 아마 그 비슷한 심정으로 마지막 김치를 불살랐다. 이 김치가 최대한 많은 갯수의 만두로 거듭나주길 바라면서. ^^ 튀겨 먹을 당면만두도 조금.
만두를 찌고 있는데 사메가 냉장고를 열다가 말했다. "김치는 이제 다 먹었나봐?" 헉스...김치 있는거 알고 있었어? -ㅅ-;; 너무 빨리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가끔 한 두 조각만 먹었단다. 어제까지도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으니 의아했던 모양.
연애시절 내가 까놓은 석류를 남편이 다 먹어버렸을때, 엄청나게 화를 내고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좋은 걸 보면 같이 보고 싶고, 맛있는건 나눠 먹고 싶어지는...그런게 사랑이라고 난 생각한다고. 그러던 내가 지금은 김치를 숨겨놓는 아줌마라는게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ㅋㅋ 사랑에의 방식이 좀 변해가는 걸 거라고 여기고 싶다. 예전엔 콩 한쪽도 나눠 먹고 싶은 마음을 사랑이라 생각했다면, 내 소울푸드를 가급적 아껴 먹으려 애썼을 남편의 마음을 지금은 그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뭔가 몹시 아줌마 아저씨스럽지만, 한 두 조각만 가끔 먹었단 말에 좀 찡해진 나는 원래는 조금만 먹으라고 하려던 만두를 아낌 없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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