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짧아진데다 날은 흐려서 출근길은 어슴푸레 정도를 넘어 캄캄할 지경이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변함 없이 비 오는 날이 좋다. 단, 출근을 안 하는 날에 한해서... ^^;; 오늘 같은 날씨엔 회사 땡땡이 치고 어딘가로 가는 기차에 훌쩍 몸을 싣고픈 충동을 억누르느라 스스로 참 수고가 많다.
이제는 어느 구석을 둘러봐도 10월보다는 11월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나라의 한 해 중 단연코 가장 음산한 달.
출근길은 캄캄하고 퇴근길은 어둑하다. 서머타임이 이번 일요일에 끝나면 시계는 1시간이 늦춰질거고 출근길이 조금 덜 어두워지는 대신 이번엔 퇴근길이 캄캄해지겠지. 서머타임은 조삼모사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매년 한다.
그 사이 난자채취가 수월하게 끝났다. 자고 일어나보니 끝났더라는. 양보다 질을 심하게 따지시는 교수쌤의 철학에 따라 소수정예만을 수확했는데, 아니 소수정예도 좋지만 이건 너무 소수가 아닌지 걱정이 심하게 된다. 채취된 난자가 모두 수정되는 게 아니고, 수정된 배아 모두가 이식날까지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매일 주사 놔가며 키워낸 나의 소듕한 알들이 이식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꼴까닥 하지나 않을지 전전긍긍 중.
그런데 어째 걱정하는 사람은 나 뿐인 듯 하다. 딱 의도한 숫자대로 나와줬다고 교수쌤은 흡족해하고 있으며 배양담당 쌤은 쌤대로 현재 상태 매우 우수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대만족이라며 소식을 전해왔다. 음 글쎄 어디까지나 현재상태가 그렇다는 거지 무사히 이식하고 착상되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 아니냐고 나만 의구심 가득. 한국에서는 3일 배양 후에 많이들 이식한다던데 여기서는 무조건 5일까지 살아남는 놈만을 이식할 모양이다. 경험 많은 쌤들이 어련히 알아서 하려니 싶지만, 웬만큼 튼튼한 배아가 아니고서는 5일간 밖에서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들어서 조마조마하다. 의술이 이렇게나 발달한 시대에도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아직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감탄스럽기도 하고. 과연 토요일까지 배아들은 모두 살아 남을 것인가. 하루하루 예고편 없는 연속극을 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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