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의 계절이 왔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가 집밥을 대표한다면, 수프 한그릇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같은 한그릇이라도 인스턴트 음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집스러움과 위로받는 기분이 있달까.
우리집에서 자주 먹는 수프는 다섯 가지 정도- 렌틸수프, 연어크림수프, 버섯크림수프, roasted 토마토/마늘수프, 비프스튜. 몇 안 되는 레퍼토리지만 돌아가며 끓이다보면 가을/겨울이 다 가버리곤 해서 새로운 수프는 좀처럼 식탁에 올라오지 않는다. ㅋㅋ
육수는 항상 닭육수를 쓰는데, 처음엔 귀찮아서 치킨스톡 큐브를 사서 쓰다가 어느 날 진짜 닭육수로 끓여보았더니...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보다. 홈메이드 육수맛을 알아버린 나는 그 이후 수프를 끓일때마다 심한 갈등에 빠져야했던 것.. 그냥 큐브를 쓸 것이냐 아니면 귀찮아도 육수를 낼 것인가.
살짝 데친 닭 (주로 뼈 + 살 아주 조금), 양파, 당근, 파슬리 줄기, 샐러리, 파, 타임, 월계수잎, 소금, 통후추를 넣고 끓여준다.
슬로우쿠커에 넣고 밤새 방치하면 편함.
매번 새로 육수 내기는 귀찮으니 한꺼번에 많이 해서 얼려두고 싶다-> 큰 냉동고를 사고 싶다-> 부엌에 자리가 없다-> 큰 집으로 이사 갈까-> 맘에 드는 집은 언제 찾고 이사는 또 언제 하나-> 그 짓을 하느니 그냥 육수를 조금씩만 끓이자 -ㅅ-;; -> 이 의식의 흐름 또한 매번 반복된다. ㅎ
육수가 다 됐으니 수프는 다 끓인거나 마찬가지. 오늘 쓸 거 빼고 나니 겨우 두 병 남네. 아까븐 것... ㅠㅠ
오늘의 수프는 렌틸수프. 렌틸 한 컵을 씻어 불려놓고
부재료로는 양파 한 개, 샐러리 약간, 당근 한두 개, 마늘, 토마토 한 개, 감자 등이 들어간다.
양파+샐러리+당근을 올리브오일에 볶다가 마늘, 칠리 플레이크, 커민을 넣어 좀 더 볶는다.
토마토와 렌틸도 마저 넣고 육수를 부어 45분 정도 푹 끓인다. 만일 감자도 넣고 싶다면 너무 오래 끓어서 뭉그러지지 않도록 중간쯤에 넣어준다. 다 끓으면 소금으로 간한다 (소금을 너무 일찌감치 넣으면 렌틸이 부드럽게 익지 않으므로 꼭 나중에).
다 끓은 후에 블렌더로 곱게 갈아주면 터키식 렌틸수프가 되고, 독일이나 그리스에서는 건더기가 있는 상태로 먹는다. 먹기 직전에 올리브기름과 화이트와인 식초를 두어 방울씩 넣어도 좋다. 그리스 사람들은 올리브와 엔초비도 꼭 곁들여 먹더라.
벽난로에 걸린 구리냄비 속 수프, 거무스름한 빵 (그럴때 주인공은 꼭 흰빵과 꿀을 갈망하지만서도)- 그런 중세유럽 시골을 상상하며 먹곤 한다. 수프를 한냄비 끓여둔 금요일 저녁에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푸근함이 있다. 나도 집에 가면 따끈한 집밥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박한 안도감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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