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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편 쌈닭 우리 보스 H에 대한 팀원들의 불만이 나날이 커져가는 느낌. 특히 목요일마다 열리는 프로젝트 미팅은 각종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다. 장시간 계속되는 업무 얘기만으로도 피곤한데, 보스와의 감정적인 충돌까지 겹쳐서 이건 뭐 말로 치고받는 격투기장이 따로 없네. 그 회의 후에는 혈압약 먹는 사람, 우는 사람, HR에 일러바치러 가는 사람 등 😂 하루가 멀다 하고 에피소드가 속출한다. 우리 보스는 확실히 어려운 보스가 맞다. 특히 그 화르륵 끓어올라 질러대는 성격 땜에 여러 사람 사표 집어던지고 나갔다. 나 또한 확 마 때려치우는 상상을 툭하면 하곤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쁜 보스야!" 라고 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울 회사 최고의 쌈닭이라는 것이다. 최강쌈닭이 내.. 2025. 11. 25.
라디오가 없는 밤 라디오를 들으며 잠드는 밤- 한국을 떠나오면서 잃은 것 중 하나로, 예상치 못했던 상실감이 커서 꽤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 당연한 듯 곁에 있어서 별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그래서 그걸 잃게 될 거라는 사실도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그때도 이미 인터넷 시대였으니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시 듣기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버퍼링에서 오는 짜증스러움과, 다시 듣기로는 채워지지 않는 2% 부족함이 아쉬움만 더 크게 증폭시키며, 결국 라디오를 들으며 잠드는 밤은 내 삶에서 그렇게 멀어져 갔다. 독일 라디오 방송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그 이질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언어의 차이를 떠나 그것은 소울(soul)의 근본적 차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첫 10초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수만이 .. 2025. 11. 24.
출근길 관찰자 시점 AI가 여러모로 유용하긴 하다. 일기내용과 딱 맞는 썸네일 구하기 어려울 때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주니 말이다. 요즘의 출근길 내 모양새를 묘사했더니 이렇게 만들어줬다. 어우 야...이게 뭐야...너무 똑같잖아. 🤣 그간 버스 안 구성원은 몇 번의 물갈이를 거쳤다. 5열 맨 왼쪽에 앉곤 하던 여자도,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 굴러온 돌(!) 아저씨도 (지난 글: 새로운 시대), 더 이상 타지 않는다. 지금은 그 자리에 10초마다 한 번씩 콧물을 킁 하고 들이마시는 여자가 앉는다. 타자마자 캔음료 뚜껑을 딱- 하고 여는 남자도 새로운 멤버다. 그러나 단연 내 눈길을 끄는 승객은, 공동묘지 정류장에서 타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나 똑같다. 이목구비와 체격은 물론, 옷과 가방까지. 그런데.. 2025. 11. 23.
What else? 퇴근길에 네스프레소 부띠끄엘 들르려면 중간에 트램에서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에 늘 온라인 주문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매장에서 샀더니 서비스 캡슐을 많이 주는 게 아닌가! 그 이후론 기꺼이 방문 구매를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줄이 긴 날에도 유독 고객수가 적은 직원이 있다. 저 사람은 판매담당이 아닌가? 하고 머뭇거리는 찰나, "어서 옵쇼~" 라고 반갑게 자기 쪽으로 유도하길래 그 직원에게서 구매를 하게 되었다. 말투가 좀 특이하고 (미디어에서 게이들을 과장되게 묘사할 때 흔히 쓰는 그 말투), 얼굴피부가 상당히 안 좋다는 걸 제외하면 정상 그 자체, 아니, 매우 친절하고 나무랄 데가 없더만. 왜 긴 줄에 선 손님들이 그 직원에게로 옮겨가지 않는지가 의아하였다. 그 후로도 갈 때마다 같은.. 2025. 11. 16.
교과서 미라의 부활 대학시절에 배운 것들이 과연 얼마나 실질적인 쓸모가 있을 것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직장생활 3-4년 차 때까지만 해도, '거 봐, 그런 건 굳이 안 배워도 되는 거였음!' 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햇수를 거듭할수록 필요한 게 많아지더니, 지금은 약대 커리큘럼 중 필요 없는 과목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날마다 절감한다. 머릿속에서 미라가 되어있던 교과서들이 어느 날 붕대 풀고 벌떡 일어나 호출하는 기분. 아마 일하는 곳이 development 부서가 아니었다면 실제로도 그다지 필요 없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 '30%의 필수템+70% 끼워 팔기' 종합선물세트 같다고 치부했던 과목들이 모두 나름의 쓸모가 있다는 걸 당시엔 몰라봐서 미안타.특히 화학. 이 화학 저 화학- 이게 현실 직장에서.. 2025. 11. 11.
티라미수의 시험 티라미수를 만들어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 사람은 참 각양각색이고 씰데 없는 강박 또한 가지가지라는 거다. 티라미수 앞에 설 때마다 왠지 시험대에 오른 착각에 빠지곤 한다.넌 나를 얼마만큼 무심하게 푹 퍼낼 수 있을까! 자, 한번 해봐~!디저트들은 대개 예쁘고 정교하지만 티라미수는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잘 정돈된 모습보다 시골 할배가 인심 좋게 대충 푹 퍼준 듯한 모양새 쪽이 더 맛있어 보이기도. 예쁘지 않아도 돼.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편하게 퍼서 맛있게만 먹으면 돼- 라고, 틀에 박힌 인간에게 건네는 위로인 것 같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왜 나는 괜히 긴장하는가.. 이게 뭐라고 심호흡까지 하면서 푸곤 하는데, 역시나 100% 릴랙스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실소하게 된다. 퍼낸.. 2025.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