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230

[Heidelberg] 해후-1 가고 싶어지면 훌쩍 기차를 타겠노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가게 될 줄은 나도 예상 못 한 일이었다. 미국비자 인터뷰 때문에 베를린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대신 나는 하이델베르크행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마치 수업 끝나고 오락실로 직행하는 초등학생처럼. 그러나...자꾸 뭔가 빠진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숙소 예약을 안 했기 때문이란 걸 꽤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9월 쯤만 되어도 아무래도 상관 없을 테지만 아직은 성수기인 지금 예약도 없이 갑자기 간다는 게 허전한 기분의 이유였던 거다. 쩝. 경솔했나? 좀 기다렸다가 단풍 짙을 때 가면 사색하긴 더 좋을 텐데. 아니, 딱 일주일만 더 기다렸어도 일 년에 세 번 밖에 없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데. 그러나 기차표 특가세일의 .. 2021. 11. 2.
[Greece Santorini #3] 노을 지다 산토리니의 정수로 꼽히는 것은 이아 (Oia) 마을, 그 중에서도 석양이다. 혹자들이 세계 최고의 노을이라 감히 말한다는. 해질녘이 되자 모여드는 사람, 사람들. 타 들어가던 태양이 이윽고 에게해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고, 카메라 촬영모드를 'sunset' 으로 바꾸었다. 저거구나... 이 인파를 여기까지 불러 모은 놈의 정체가. 어디에서도 환호성은 터지지 않았다. 정적...고요. 어쩌면 저거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왕자가 마흔 몇 번 의자를 옮겨 가며 봤다던, 가슴 아린 그 노을이...저것인지도. 이 순간을 위해 넉넉히 남겨둔 메모리건만 선뜻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바보 같은 마음이여. 찍는 순간 저 모습은 내 눈을 떠나 그렇고 그런 노을풍경으로 기계 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 머리를 피해 몸은 이.. 2021. 11. 1.
[Greece Santorini #2] 그리고 뜨거운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1. 11. 1.
[Greece Santorini #1] The Big Blue 가!자! 가자! 포카리스웨트 섬으로! 일반페리로 4시간 걸리는 이 거리를 쾌속엔진 장착한 '날으는 돌고래' (Flying Dolphine) 호가 2시간 만에 사뿐 당도시켜 준다. 화산섬이라더니 과연 신기하게 생겼다. 음료수 광고에 나오던 그 풍경은 버스로 제법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가드레일도 제대로 없는 아찔한 해안 낭떠러지 길. '운전 중 기사에게 말 걸지 마시오' 큼지막하게 적혀 있으나 아무도 말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 자발적으로 마구마구 말씀하시는 아저씨. -.- 자, 여기가 거긴데. 무슨 생각이 드니.. 어릴 적 쓰던 크레파스 상자 생각이 나. 많이 쓰는 색만 몽땅해져서 들어 있던. 이 곳 아이들에게는 두 배는 긴 파란색이 필요하지 않을까. 온 blue란 blue만 골라 모아 모두 여기에다 쏟.. 2021. 11. 1.
[Greece Crete #3] 유적, 혹은 돌덩이 내 비록 방문동기는 허술했으나 구경만은 성심껏 하여 주리! 아침 일찍부터 크노소스 궁전으로 향했다. 유적이란 자고로, 모르고 보면 돌덩이요, 알고 보면 살아 숨쉬는 전설이라. 자, 신화를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보자고. 아...오...아아니 이것은...! 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 알고 봐도 돌덩이인 경우가 간혹 있다고. -.-;; 그러나 이 곳은, 적어도 솔직하다. 난해한 예술들이 흔히 그러하듯 감동 받길 강요하지도 않고, 무감동인 이유를 여행객의 '고매하지 못한 소양' 탓으로 돌려 실망한 객들을 두 번 죽이는 비겁한 짓도 하지 않는다. 뻔뻔하리 만치 꾸밈 없이 뒹구는 돌덩이들. 복원이랍시고 인공냄새 풀풀 나게 해놓고 푼돈 받아 챙기는 것 보다야 얼마나 덜 깨는가. 여행이 고달파지는 이유를 .. 2021.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