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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을 기다리는 피클 오이를 어제 샀어야 했다. 피클 담그기 좋은 품종이 오랜만에 있었는데 그만 깜박 하고선.. 오늘 다시 갔더니 그새 동이 났다. 터키상점에서 비슷한 걸 골라오긴 했으나 왠지 미심쩍다. 어차피 주인공은 콜라비와 무가 될테니 오이는 쪼매만 넣어야겠다. 스물 일곱에 독일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식재료에 대한 나의 무지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원래 무식한데다 한국에서 못 보던 것들까지 더해지니 장 보러 가는건 일종의 탐험이었고, 기름, 식초, 곡물, 각종 향신료의 다양함 앞에서 날마다 동공지진이었다. 아니 내가 이런 걸 다 먹을 일이 있기는 할까? 싶은게. 지금은 집에서 쓰는 식초만도 대여섯 가지는 되는걸 보면 내 식생활도 그동안 조금은 변했나보다. 도시락에 곁들일 채소를 따로 조리하기 귀찮을때 .. 2021. 11. 1.
[Greece Santorini #3] 노을 지다 산토리니의 정수로 꼽히는 것은 이아 (Oia) 마을, 그 중에서도 석양이다. 혹자들이 세계 최고의 노을이라 감히 말한다는. 해질녘이 되자 모여드는 사람, 사람들. 타 들어가던 태양이 이윽고 에게해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고, 카메라 촬영모드를 'sunset' 으로 바꾸었다. 저거구나... 이 인파를 여기까지 불러 모은 놈의 정체가. 어디에서도 환호성은 터지지 않았다. 정적...고요. 어쩌면 저거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왕자가 마흔 몇 번 의자를 옮겨 가며 봤다던, 가슴 아린 그 노을이...저것인지도. 이 순간을 위해 넉넉히 남겨둔 메모리건만 선뜻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바보 같은 마음이여. 찍는 순간 저 모습은 내 눈을 떠나 그렇고 그런 노을풍경으로 기계 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 머리를 피해 몸은 이.. 2021. 11. 1.
[Greece Santorini #2] 그리고 뜨거운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1. 11. 1.
[Greece Santorini #1] The Big Blue 가!자! 가자! 포카리스웨트 섬으로! 일반페리로 4시간 걸리는 이 거리를 쾌속엔진 장착한 '날으는 돌고래' (Flying Dolphine) 호가 2시간 만에 사뿐 당도시켜 준다. 화산섬이라더니 과연 신기하게 생겼다. 음료수 광고에 나오던 그 풍경은 버스로 제법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가드레일도 제대로 없는 아찔한 해안 낭떠러지 길. '운전 중 기사에게 말 걸지 마시오' 큼지막하게 적혀 있으나 아무도 말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 자발적으로 마구마구 말씀하시는 아저씨. -.- 자, 여기가 거긴데. 무슨 생각이 드니.. 어릴 적 쓰던 크레파스 상자 생각이 나. 많이 쓰는 색만 몽땅해져서 들어 있던. 이 곳 아이들에게는 두 배는 긴 파란색이 필요하지 않을까. 온 blue란 blue만 골라 모아 모두 여기에다 쏟.. 2021. 11. 1.
[Greece Crete #3] 유적, 혹은 돌덩이 내 비록 방문동기는 허술했으나 구경만은 성심껏 하여 주리! 아침 일찍부터 크노소스 궁전으로 향했다. 유적이란 자고로, 모르고 보면 돌덩이요, 알고 보면 살아 숨쉬는 전설이라. 자, 신화를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보자고. 아...오...아아니 이것은...! 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 알고 봐도 돌덩이인 경우가 간혹 있다고. -.-;; 그러나 이 곳은, 적어도 솔직하다. 난해한 예술들이 흔히 그러하듯 감동 받길 강요하지도 않고, 무감동인 이유를 여행객의 '고매하지 못한 소양' 탓으로 돌려 실망한 객들을 두 번 죽이는 비겁한 짓도 하지 않는다. 뻔뻔하리 만치 꾸밈 없이 뒹구는 돌덩이들. 복원이랍시고 인공냄새 풀풀 나게 해놓고 푼돈 받아 챙기는 것 보다야 얼마나 덜 깨는가. 여행이 고달파지는 이유를 .. 2021. 11. 1.
[Greece Crete #2] 일단은 이국적인 가는 여행지마다 두 단어로 요약하기를 해본다. 프라하: 까를교, 야경 / 두브로브닉: 투명초록, 부서지는 햇빛- 하는 식으로. 크레타는 일단... 이국적이다. 이제 나에게 유럽은 어디나 유럽일 뿐이라고 멋대로 생각하던 내게 이 섬은 첫인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봐! 이만 하면 아직 겁나 이국적이 아닌가 말이야." 유적의 섬 크레타. 허나, 나의 방문동기는 다소 불순한 것이었다. 산토리니에 빈 숙소가 없었기 때문이쥐. 씨익.. -.-^ 크레타 포세이돈 호텔의 점수는 가격대비 ★☆☆☆☆. (친절함과 푸짐한 아침식사를 봐서 그나마 조금 용서해 준거다. -.-) Check-In 후 바로 항구로 나갔다. 바삐 들고 나는 배들로 항구는 북적대고 있었다. 아, 그렇지... 땅이, 하늘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 2021.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