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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26

[Heidelberg] 해후-2 역에 내리자 마자 밀려오는 옛 추억들은 그간 흐른 세월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선명한 총 천연색의 것이었다. 유스호스텔을 찾아 가다가 예기치 못하게 헤맸더랬지. 그러자 어느 친절한 할머니가 티코 만한 차로 태워다 줬었고, 리셉션 청년은 'Do you have a 이불?' 이라고 한국말을 섞어 그야말로 황홀한 리셉션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쥐 죽은 듯 적막하던 실베스터의 밤, 그리고 95년의 새해 첫날 네카 강변의 공중전화로 집에 문안인사를 했던 기억. 예상대로 숙소사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남은 데라곤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농가 아니면 최고급 호텔들 뿐. 어찌 할까 생각하다가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해보니 환영한다 한다. ^^;; 음...숙소까지 그 시절 그 곳으로 할 생각은 사실 없었는데 일이 좀 우습게 되었.. 2021. 11. 2.
[Heidelberg] 해후-1 가고 싶어지면 훌쩍 기차를 타겠노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가게 될 줄은 나도 예상 못 한 일이었다. 미국비자 인터뷰 때문에 베를린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대신 나는 하이델베르크행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마치 수업 끝나고 오락실로 직행하는 초등학생처럼. 그러나...자꾸 뭔가 빠진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숙소 예약을 안 했기 때문이란 걸 꽤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9월 쯤만 되어도 아무래도 상관 없을 테지만 아직은 성수기인 지금 예약도 없이 갑자기 간다는 게 허전한 기분의 이유였던 거다. 쩝. 경솔했나? 좀 기다렸다가 단풍 짙을 때 가면 사색하긴 더 좋을 텐데. 아니, 딱 일주일만 더 기다렸어도 일 년에 세 번 밖에 없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데. 그러나 기차표 특가세일의 .. 2021. 11. 2.
[Greece Santorini #3] 노을 지다 산토리니의 정수로 꼽히는 것은 이아 (Oia) 마을, 그 중에서도 석양이다. 혹자들이 세계 최고의 노을이라 감히 말한다는. 해질녘이 되자 모여드는 사람, 사람들. 타 들어가던 태양이 이윽고 에게해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고, 카메라 촬영모드를 'sunset' 으로 바꾸었다. 저거구나... 이 인파를 여기까지 불러 모은 놈의 정체가. 어디에서도 환호성은 터지지 않았다. 정적...고요. 어쩌면 저거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왕자가 마흔 몇 번 의자를 옮겨 가며 봤다던, 가슴 아린 그 노을이...저것인지도. 이 순간을 위해 넉넉히 남겨둔 메모리건만 선뜻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바보 같은 마음이여. 찍는 순간 저 모습은 내 눈을 떠나 그렇고 그런 노을풍경으로 기계 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 머리를 피해 몸은 이.. 2021. 11. 1.
[Greece Santorini #2] 그리고 뜨거운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1. 11. 1.
[Greece Santorini #1] The Big Blue 가!자! 가자! 포카리스웨트 섬으로! 일반페리로 4시간 걸리는 이 거리를 쾌속엔진 장착한 '날으는 돌고래' (Flying Dolphine) 호가 2시간 만에 사뿐 당도시켜 준다. 화산섬이라더니 과연 신기하게 생겼다. 음료수 광고에 나오던 그 풍경은 버스로 제법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가드레일도 제대로 없는 아찔한 해안 낭떠러지 길. '운전 중 기사에게 말 걸지 마시오' 큼지막하게 적혀 있으나 아무도 말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 자발적으로 마구마구 말씀하시는 아저씨. -.- 자, 여기가 거긴데. 무슨 생각이 드니.. 어릴 적 쓰던 크레파스 상자 생각이 나. 많이 쓰는 색만 몽땅해져서 들어 있던. 이 곳 아이들에게는 두 배는 긴 파란색이 필요하지 않을까. 온 blue란 blue만 골라 모아 모두 여기에다 쏟.. 2021. 11. 1.
[Greece Crete #3] 유적, 혹은 돌덩이 내 비록 방문동기는 허술했으나 구경만은 성심껏 하여 주리! 아침 일찍부터 크노소스 궁전으로 향했다. 유적이란 자고로, 모르고 보면 돌덩이요, 알고 보면 살아 숨쉬는 전설이라. 자, 신화를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보자고. 아...오...아아니 이것은...! 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 알고 봐도 돌덩이인 경우가 간혹 있다고. -.-;; 그러나 이 곳은, 적어도 솔직하다. 난해한 예술들이 흔히 그러하듯 감동 받길 강요하지도 않고, 무감동인 이유를 여행객의 '고매하지 못한 소양' 탓으로 돌려 실망한 객들을 두 번 죽이는 비겁한 짓도 하지 않는다. 뻔뻔하리 만치 꾸밈 없이 뒹구는 돌덩이들. 복원이랍시고 인공냄새 풀풀 나게 해놓고 푼돈 받아 챙기는 것 보다야 얼마나 덜 깨는가. 여행이 고달파지는 이유를 .. 2021.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