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47 밑지는 장사 가전제품 사이트를 구경하다, 서울 그 녀석 생각이 났다. 이여사의 드라마 삼매경에 그다지 훌륭하게 협조치 않는- 구형 TV 그 녀석. 그대로 '구매' 를 클릭해 TV 한 대를 배달시켰다. 학생의 경제력으로 선물하는 TV. 빤하지 않은가. 하나같이 몸집 큰 요즘 물건 치고는 영 쪼매난 아날로그 녀석. 본격 디지털화 되는 2010년 전엔 필히 다시 선물하겠다 허풍을 떠는 내게 이여사는 그저 기분 좋게 웃었다. 풀 덕지덕지 말라붙은 종이 카네이션에도 기뻐하던 그들이었고, 당신들 능력으로 가는 좋은 여행보다 자식이 보내주는 알뜰투어에 더 설레 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란 손해 보는 장사인 거다. 그리고 그들의 그 밑지는 장사를 지켜보기가 나이가 들수록 나는 너무 시리다. 2021. 11. 1. 풋풋함 우편함을 뒤적이고 있는데, 동양 여학생 하나가 쭈빗쭈빗 말을 걸어왔다. "Entschuldigung, kommen Sie aus Korea?" (실례합니다. 한국분이신가요?) 오랜만이었다. 초보 특유의 그 신선한 aura와 상기된 표정. (독일 와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 이 몸이라니 반가울 법도.) 곧이어 물 만난 듯 질문이 쏟아졌고, 아는대로 답해주었다. 전화신청은, 인터넷은, 외국인청은, 전입신고는... 후훗, 모든 질문이 똑같지 뭔가. 몇 년 전 나 또한 궁금해 하던 것들. "정말 고맙습니다 언니!"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는 공중전화로 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야? 여긴 벌써 어두워! 아직 방에 전화가 없어서 답답해..." 웃음이 났다. 촌스런 신입생들이 상큼한 이유를, 떡 돌리는 새댁이 이뻐.. 2021. 11. 1. 나도 그래 아파트 꼭대기에 줄 한 번 잘 맞춰 앉은 새들. 근 40분을 꼼짝 않고 저러고 있는 거다. 은행 갔다 오고, 차 마시고, 빨래 개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혹시나 하여 봤더니 아직도 여전한 그 포즈에 그만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훗, 미안. 사실은 바쁠 텐데. 날개 힘을 모으느라.. 바람을 읽느라. 그리곤 날겠지. 바쁘게 날아야겠지. 나도 그래.. 나도 그럴 거란다, 새들아. 2021. 11. 1. 밤이 무서버 모든 게 과장된다. 고민이 번뇌로, 바람이 절박한 소망으로, 커피냄새가 황홀한 마법의 향으로. '네버엔딩 스토리' 속 몬덴킨트의 숲처럼 밤만 되면 쑥쑥 자라나서는,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이 시간엔 아무렇다. 매우 아무렇다. 2021. 11. 1. 뒷모습 무겁게 맞이해서 미안했단다. 함께 해주어 고마웠단다. 돌아서는 뒷모습, 고이 새겨 맘 속에 넣을께. 가거라.. 잘 가거라, 이 해여. 2021. 11. 1. 있으면 좋은 욕실 전구 좀 갈아주십사, 연통을 한 건 지난 금요일. 아저씨가 오신 건 오늘 오후가 되어서였다. 제때 못 와 미안하다, 재촉하지 그랬느냐, 한다. "아 뭐 괜찮아요. 크게 불편하지 않았어요." 그렇다.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샤워, 세수, 양치- 좀 어둡다고 안 되는 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어둑한 욕실과는 점점 친숙해져, 오늘 오후 아저씨가 벨을 눌렀을 땐 서동요의 오색야명주 비밀 듣기를 방해한 그 방문이 나는 몹시 야속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돌아온 광명... 미안하다, 환영이 열렬하지 않아서. 나 알아버렸거든. 네가 '없으면 안 되는' 이 아니라 '있으면 좋은' 존재라는 걸.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였을 지 몰라. 2021. 11. 1. 이전 1 ··· 160 161 162 163 164 165 166 ··· 175 다음